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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Nov 08. 2021

참 못났다, 작은 응어리 하나 푸는 데도 인색한 나는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아이고, 저보다 먼저 눌렀나 보네요."

"네, 그런가 보네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3층에 사는 이웃이 말을 걸었다.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는데 엘리베이터가 13층까지 올라온 걸 보면 그녀보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는 말이다. 그녀 눈에 웃음기가 환하게 흘렀다. 눈의 웃음기로 보아 마스크 안에서 활짝 웃고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하얀 치아는 상상할 수 없다. 가끔 보는 얼굴이지만 한 번도 그녀와 이렇게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내게 이렇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 3층에 사는 이웃이다. 그러나 친하게 지내고 싶거나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은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그녀에 대한 정보가 있을 뿐이다. 가끔 차 나누는 이웃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 내 남편과 그녀의 남편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함께했었다는 것, 그녀의 아들이 의사라는 것 정도다. 


오늘 그녀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 글로 써 놓으면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억양에는 남녘이 담겨 있었다. 





단답형으로 말을 끝내기에는 그녀의 환한 눈웃음에 대한 내 태도가 나 스스로에게도 내차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깨에 메는 장바구니 대신 다소 부담스럽게 크긴 하지만 튼튼해 보이기도 캐리어를 잡고 있었다.

"튼튼하고 좋아 보이네요." 


좋아보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언제부턴가 내 마음과는 달리 상대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자 그녀가 반색을 했다.

"좋아 보여요? 첨엔 좀 커서 맘에 안 들었는데 써 보니까 괜찮네요. 며느리가 사 줬어요."

"그러시군요, 가격이 좀 나가겠네요."

"8만 5천 원 줬다고 합디다."

"요즘은 묶음으로 파는 게 많으니까 한 번에 많이 담을 수 있겠네요. 마트 가세요?"

"오늘 동네 장날이라 가 볼라고요."


"좋은 며느님 두셨네요."

"며느리가 좋아요? 딸이 더 좋다는디?"

그녀의 말에서 남녘 말투가 튀어나왔다. 좋다는디. 왠지 그녀가 쏟아내는 속내가 싫지 않았나 보다. 나도 내 속을 털어놓고 있었다.

"전 며느리가 없거든요."

"아아, 그래요. 저는 아들만 셋이요 셋."

"와, 아들 부자시네요."


엘리베이터 13층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오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녀의 눈은 생글생글했다. 뜬금없는 그녀의 반색에 약간 어리둥절해진 나는 생글생글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에 비해 부드러워진 것만은 확실했다.





한 20년쯤 지난 일이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심한 편두통으로 한밤에 응급실에 실려가 그 길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약과 죽으로 버티다 입원 열흘 만에 병원에서 퇴원한 나는 가만히 서 있을 때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쇠약해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려면 어떻게든 기력을 회복해야 했다. 먹히지 않는 식사와 즐기지 않는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은 10분만 걸어도 땀으로 젖을 정도로 빨리 걷기를 하지만 그때는 병후 회복기라 느릿느릿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난간을 잡고 몇 계단 오르는 정도의 운동으로 만족해야 했다. 3층쯤 오르는데 한 여자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혼잣말인 듯했지만 내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산에 가면 될 것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인가 보았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나는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내가 산에 오르기 싫어서 계단 몇 개 오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무렵엔 계단오르기의 장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계단오르기가 운동이 된다는 이야기들이 경험담과 실험을 통한 결과와 함께 들려오곤 했다. 그러니 그녀의 눈에 나의 계단오르기 운동은 낯설고도 무모해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나는 조금 더 기력을 되찾으며 계단오르기를 계속했다. 3층 쯤에서 가끔 그녀와 마주쳤지만 그녀는 계단을 오르는 내가 내내 못마땅한지 눈의 흰자위가 커진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나 또한 남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참견하려 하는 그녀가 내 비위에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를 눈꼬리 끝으로만 보게 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내게 마음을 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계단오르기의 장점과 주의점들이 매스컴을 타고 알려지게 되면서 계단을 오르던 나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을 수 있다. 


그녀는 오래 전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내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잊었을 수도 있지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생각은 기억하고 있다는 쪽으로 기운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특히 남편들끼리 서로 가까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던 차에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딱 마주친 것이다. 그녀는 1층을 눌렀을 테고 나는 그녀보다 먼저 올라오는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왜? 오늘 그녀와 내가 함께 탄 엘리베이터는 얼마 전부터 내가 사는 13층의 내림 버튼이 고장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 오래된 엘리베이터라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아 수리가 늦어지고 있어 내려갈 때도 올라갈 때도 일단 올림 버튼을 눌러야 한다.


나는 왜 풍화되고도 남았을 이런 오래된 기억들을 미라 만들듯 생생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그녀에게 계단을 오르던 당시 내 상황을 전해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한 마디 말이 영그는데는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응어리 하나 풀지 못하고 보물 숨기듯 꿍치고 있었다니.


참 못났다. 발이 푹푹 빠지도록 쌓인 노란 은행잎을 하릴없이 툭툭 차 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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