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강아지풀

by 장미

봄이 오면서 아파트 둘레로 산책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와 키를 견줄 정도로 높이 자라던 메타세쿼이아의 무성한 가지들이 싹둑싹둑 잘려 나갔다. 산책로에 걸리적거릴 것 같은 나무들은 밑동만 남기도 했다.


높고 청정한 자리에 집을 짓고 살던 까치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집을 잃었다고 하소연을 해댔다. 해 잘 드는 집 에어컨 실외기 옆에 자리를 잡고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까치 부부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도 못 가 쫓겨났다. 까치가 에어컨 실외기에 세 들어 살기를 원치 않는 집주인이 우산대로 까치 부부를 밀어냈다. 집을 잃고 집 지을 자리를 찾지 못한 까치들은 옥상을 맴돌기도 했다. 땅을 파고 고르고 펜스를 설치하는 등 포클레인과 기계톱 등 작업기 소리가 요란한데 까치들의 울음까지 섞이면서 귀가 먹먹한 날도 있었다.





산책로가 만들어지는 동안 목련이 피었다 지고 라일락도 피었다 졌다. 까치들은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갔는지 소리가 많이 줄었다. 산책로가 마무리되면서 새로 만든 화단의 주인공은 금계국이었다. 이 자리는 원래 강아지풀들이 자라던 곳이다. 강아지풀도 나름 좋은 놀이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풀이라 강아지풀만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면 어떨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금계국에 완전히 밀려났다.


몇 해 전에는 비비추와 맥문동을 주로 심었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대체로 금계국을 심는 걸 보면 화초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키가 부쩍 자란 금계국 사이에 이삭을 올린 강아지풀 몇 포기가 자리 잡았다. 강아지풀은 녹색 작은 알갱이들마다 푸른 털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강아지풀에게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 저 털들이 어린 날 내게로 기어 오던 강아지풀의 다리 역할을 했겠다. 손이 절로 강아지풀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가느다랗지만 나름의 힘을 갖춘 모습이 반려견들의 털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가 철들 무렵 생활 전선에 뛰어든 엄마 대신 나는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누구나 어느 때의 이별에 대해서나 그렇겠지만 할머니는 할머니 나이 예순 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할아버지를 늘 애틋해하셨다.


여름 한낮은 무엇에 빠져 봐도 길고 지루하다. 강변의 메꽃을 따서 귓가에 꽂고 놀거나 모래밭에 앉아 두꺼비집을 짓는 일도 며칠 계속하다 보면 싫증이 나곤 했다. 할머니는 손바닥 만한 텃밭의 고추며 가지 사이에 자라는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잡초들을 뽑아내며 긴 여름 한낮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엔 할머니의 사르르 떨리던 눈꺼풀과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할머니의 며느리인 내 엄마에 대한 약간의 험담 끝에 흘러나오던 한 줄기 가느다란 명주실 같은 할머니의 콧노래에 신경이 더 쓰였다. 엄마 대신 내 보호자가 된 할머니의 왠지 모를 서글픔이 내 핏속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곤 했던 것이다.


풀들이 허리를 꺾다 못해 땅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눕는 더운 날이었다. 풀을 뽑고 있던 할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실컷 놀아도 여전히 해가 중천인 날, 좁은 툇마루에 앉아 심심함으로 온몸을 배배 꼬던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나 고무신을 꿰어 신고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쇠비름을 한 뿌리 뽑아 내게 건네셨다. 그리고 당신도 쇠비름 한 뿌리를 뽑아 문지르며 노래를 하셨다. 신랑 방에 불 켜라 각시 방에 불 켜라. 신랑 방에 불 켜라 각시 방에 불 켜라. 내게 따라 해 보라시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쇠비름 뿌리가 여름 한낮 햇빛 아래 낮은 불꽃처럼 희끄무레한 붉은색을 띠었다. 나는 땡볕 아래 앉아 풀을 뽑는 할머니 곁에서 쇠비름 뿌리가 불처럼 뜨거워질 때까지 하염없이 쇠비름 뿌리를 훑으며 노래를 불렀다. 신랑방에 불 켜라 각시방에 불 켜라.





이번에는 할머니가 고추밭 가장자리에서 마디게 자라고 있는 키 작은 강아지풀을 잡아당겨 뽑았다. 앞니와 송곳니 사이 이가 빠진 할머니는 앞니 사이에 강아지풀 줄기를 넣고 힘겹게 잘라냈다. 그런 다음 잘라낸 강아지풀을 손바닥에 놓고 손바닥을 가늘게 흔들며 주문을 넣었다. 오요요요요요요요. 그러자 강아지풀이 할머니 손목 쪽으로 강아지처럼 다가왔다. '너도 한번 해 봐라.'라는 말도 없이 할머니는 쇠비름 뿌리를 훑고 있는 내게 강아지풀을 건넸다.


말 수 적은 할머니를 닮아 나도 말이 적지만 가끔 하는 말조차도 멋없는 말인 경우가 많다. 할머니는 내게 강아지풀을 건네주고는 다시 땅바닥을 들여다보는 데 열중했다. 없는 풀이라도 심었다 뽑을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듯 할머니 역시 내게 많은 마음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내 엄마에 대해서만은 조금이라도 좋은 이야기를 해 주면 안 될까 하는 바람이 굴뚝같았다.


그때로부터 많이 지나와 당시를 돌아보면 할머니는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인 며느리를 바라본 게 아니었다. 다른 많은 시어머니들이 그렇듯 할머니 역시 며느리를 바라보는 눈에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내 엄마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할머니에게 대거리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여러 번 내 귀청에 엄마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꽂으면서도 내 귀에서 흐르는 피는 보지 못하셨다. 특히 엄마에게도 확인한 적 없는 6.25 동란 시절을 견디고 살아남은 가여운 내 엄마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나는 할머니를 처음부터 끝까지 좋게만 추억할 텐데 말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호랑이 잡으러 길 떠난 포수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 유복자 이야기를 백한 번째 들은들 어떠랴.





나는 강아지풀 놀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함께 수십 번도 더 불렀던 강아지 부르는 소리, 오요요요요요요요를 전혀 몰랐다는 듯 할머니가 가르쳐준 놀이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 할머니 옆에서 오래오래 따라 불렀다.


맨땅에 새로 들어와 자리 잡은 금계국들은 금계국대로 잘 살아 꽃도 피고 무성해지기를 바란다. 금계국들 사이에 몇 포기 남지 않은 강아지풀이나마 이대로 작은 집단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더는 뽑아내지 않기를 바란다. 할머니와의 아련한 내 추억이 그 옆을 지날 때마다 함께할 수 있게 말이다.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 모를 놀이 하나 품고 산다. 오요요요요요요요. 할아버지를 일찍 보낸 할머니의 얍실얍실한 눈꺼풀이 사르르르 떨리듯 오요요요요요요 소리에 맞춰 내게로 다가오던 강아지풀 노래를 강아지풀 앞에서 불러보았다. 물론 강아지풀을 뽑지는 않았다. 목을 잘린다는 건 강아지풀에게도 아주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살아오면서 충분히 알게 되었기에 말이다. 금계국 사이에서 강아지풀들이 내가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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