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수라면 우선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보이는 노학자 파우스트에게도 아직 다 채우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 무엇을 채우기 위해 노학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이는 신과 악마의 내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로서 마지막엔 신(=선)이 이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독후감 쓰기 도서 목록 중에 있던 책이다. 중학교 2학년 수준에 맞는 독후감을 썼다고 생각하셨던 듯 당시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이 선악이나 욕망에 대해 알면 뭘 얼마나 알았을까만, 중학교 2학년에게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한 이유 또한 있었을 터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문장 하나가 있다. ‘영원한 여성은 선을 이끈다.’
선을 이끌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여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북한의 영수 김일성을 부숴버리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나의 그 시절 그 꿈은 우리나라의 반공체제에 기초한 참으로 순진한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받아온 반공교육에 이어 중학교 시절 김신조 일당이 내가 사는 동네 바로 옆 산을 타고 청와대까지 접근했다는 뉴스는 나의 이 꿈을 조금 더 지속시킨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매혹적인 여인이 될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매력이란 아름다움일 수도 있지만 썩 아름답진 않더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데 뛰어난 사람만이 가진 재능일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쪽에도 특별하지 않았고 그저 나 자신을 성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사춘기의 시작과 함께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여고생이 되면서 꿈이 바뀌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생각이나 마음 나누기를 하려면 반드시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환경은 내게 여상에 입학하여 동생들 뒷바라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지만 나는 환경에 따르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준 환경에 늘 반항했다. 아들이 뭔데? 왜 큰딸인 내가 희생해야 하는 거지? 아버지와의 갈등은 내가 세상 어떤 남자와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내공을 쌓게 하는 기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의 꿈은 완전히 사라졌다. 많은 여자가 그렇듯 오로지 아이 생각뿐이었다. 하나만 키우자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고 둘째도 낳았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친구들은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며 만 서른한 살의 나를 어린애 취급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결코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하지 않겠다고 수백 번도 더 다짐했지만 나는 큰 아이로부터 외할아버지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보고 배운 게 아버지의 교육관이었으니 그럴 수박에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집을 나서기까지 나는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9.99999....%를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고 나는 나머지 0.00000.... 1%로 목숨만 유지하듯 살겠다고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사회에서 특출하게 잘 나가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눈앞의 화려한 꽃보다는 작아도 본인만의 것일 수 있는 꽃을 찾아가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조언 정도를 했을 뿐이다.
이제 내 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아이들은 나의 품을 떠났다. 나는 나를 위해 남겨 두었던 0.00000.... 1%의 최대화를 꿈꾸는 중이다. 얼마나 자랄 수 있을지는 이 또한 가 보아야 알게 될 일이다. 아이들도 남편도 각자 자신이 자신에게 할애했던 비율에 따라 남은 생을 살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0.00000.... 1%를 99.99999...%로 사용하기를 욕망한다. 나는 비로소 꿈 이상의 욕망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릴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꽁꽁 숨겨 두었던 나의 마음을 세상에 내어 놓을 꿈을 꾸면서 내게 주어진 남은 공간과 시간을 가꾸고자 한다.
파우스트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이룬 상태에서 더 큰 것을 욕망한 한 인간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쳐 결국 악마에게 영혼까지 파는 일을 택한다. 나는 바라던 바마다 마음속에서 사장되곤 했던 평범하다 못해 비루하다는 말조차 아까울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이런 내가 파우스트를 감히 입에 올리는 것은 적어도 나는 어떤 욕망과 관계 지어 내 영혼을 파는 일은 꿈도 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이쯤에서 내게도 영혼을 팔라는 유혹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내가 허락만 한다면 의사든 변호사든 판검사든 누구 하고라도 내가 골라서 혼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며 내게 정성을 들인 사람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유혹은 내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결혼에 목숨 건 여자가 아니었다. 지금도 내 욕망과 그가 제시한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데 대해서는 깊이 감사드린다.
유학에서 돌아온 그가 내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 나 같은 게 뭐라고, 그는 악마도 아니고 나를 인간적으로 사랑한 평범한 나이 많은 동성의 친구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분께 비로소 유혹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욕망이 컸든 작았든 이루었든 사장되었든 그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나로서 내 본연의 모습인 현재의 나로 성장했다.
때마다 나의 욕망도 변하면서 내 욕망의 나이테도 조금 더 탄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욕망은 잘 쓰면 개인이나 사회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동시에 잘못 쓰면 개인은 물론 사회까지 몰락하게 하는 양날의 칼이다. 적어도 한 사람에만은 선을 이끄는 영원한 여성으로 살았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