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생의 갈피 갈피 노래는 달라도

by 장미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 턴테이블 위에 있는 레코드판을 돌린다. 바늘이 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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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기운 때문인지 졸음이 자주 몰려왔고 그러면 잠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으나 저녁이 되자 낮 동안 어떤 생각 속을 헤맸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 성근 기억의 체에 걸린 건 종일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가 잠깐씩 귀에 들어왔다는 것과 남편과 카톡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정도였다. 그래, 이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구나, 흘러간 생각은 흘러간 대로 두어야지, 언젠가는 그것이 내 머릿속을 순환하여 올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 순환하여 오지 않는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지. 그럴 이유가 있는 거겠지.





나는 가사 있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사 있는 음악 중 합창이나 중창은 예외다. 합창과 중창에서는 가사보다는 잘 어우러진 화음에 나를 맡긴다 해도 좋을 만큼 편안함을 느낀다. 어우러지는 화음이 내 귀에 들어와 각각 제 목소리를 낼 때 나만이 느끼는 고유한 한 줄기 환희 비스한 것이다. 내가 합창이나 중창을 좋아하는 데는 중 고등학교 6년간의 합창제의 영향도 크지만 화음과 화음 사이의 행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내재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합창이나 중창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 내 안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기 위해서는 침 넘기는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질 만큼의 정제된 침묵이 필요하다. 물론 클래식도 꺼 둔다. 거기서 느끼는 고요나 무미건조함이 문제 해결에는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결혼과 함께 가사 있는 노래를 즐기게 되었다. 이른바 자장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직장 맘들의 대부분은 아침에 떼어 놓고 나온 아이의 얼굴이 삼삼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종일 아기가 보고 싶어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섬집아기를 흥얼거렸다. 일을 마치자마자 귀가해서는 열 일 제치고 아기를 씻겨 눕히고 알고 있는 자장가를 총동원해 불러 주었다. 그 끝에는 늘 섬집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섬집아기는 그 가사가 아기에게는 그리 권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기사를 보았다. 가사를 다시 음미해 보았다. 그랬다. 어쩌면 섬집아기는 아기를 위한 노래라기보다 아기를 떼어 놓을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한때 건강이 좋지 않아 1년 정도 매일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전혀 뜻밖의 나를 발견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한 시간 30분 정도 산길을 걷는 동안 나는 한 노래만을 읊조리고 있었다. 제대로 알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으며 가사와 가락이 뒤죽박죽인 줄도 모르고 부른 노래였다. 건강이 회복되고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나와 함께했던 그 산길에서의 노래는 잊혔다.


십 년쯤 흘렀을까? 우연히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를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었다. 정훈희라는 가수였다. 비로소 가사 검색을 해 봤다. 노래 제목도 알게 되었다. 꽃길. 나는 뇌리에 박힌 꽃길의 1절 일정 부분만을 반복해서 부르곤 했기에 2절 가사는 아예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듯 생소했다. 나는 이제 겨우 1절 끝까지 흥얼거리는 중이고 2절까지 외우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꽃길 / 정훈희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

잊지 못해서 찾아오는 길 / 그리워서 찾아오는 길

꽃잎에 입 맞추며 / 사랑을 주고받았지

지금은 어데 갔나 / 그 시절 그리워지네

꽃이 피면은 돌아와 줘요 / 새가 우는 오솔길로

꽃잎에 입 맞추며 / 사랑을 속삭여줘요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

생각이 나서 찾아오는 길 / 아카시아 피어 있는 길

꽃향기 맡으면서 / 행복을 약속했었지

지금은 어데 갔나 / 그때가 그리워지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 낙엽이 쌓이는 길

겨울이 오기 전에 / 사랑을 속삭여줘요 / 사랑을 속삭여줘요



‘꽃잎에 입 맞추며’ 부분에서 나는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곤 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로렌스가 작품을 탈고했을 당시 로렌스를 낳은 영국에서는 물론 미국의 출판사에서도 출판을 거부했을 정도로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느 봄날 나는 배꽃 흐드러진 끝이 없을 것 같은 드넓은 배 밭 옆을 지나며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했던 적이 있다. 흐드러진 배꽃 사잇길 어딘가 약간의 여유 있는 자리에서 두 남녀의 적나라한 사랑이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같은 것 말이다.


실제로 꽃은 입을 맞추기보다 코를 들이대고 향기를 맡는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러니 ‘꽃잎에 입 맞추며’란 지극히 성적인 애무를 에둘러 표현한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대중이 함께 부를 노랫말에 들어갈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순수한 시각으로 본다면 꽃잎에 입 맞추던 시절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을까 되짚어보면 인생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절이 없다. 관점에 따라 외설일 수도 있고 전혀 반대일 수도 있을 테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아직 내 시야가 넓어진 것 같지는 않다.


많은 가사 있는 음악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극히 속물적인 것을 느끼곤 한다. 가사 있는 음악을 멀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 턴테이블 위에 있는 레코드판 돌렸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클래식 음악도 합창이나 중창도 듣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조금의 불편이나 궁핍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편하고 풍요로웠다면 적막에 대한 지나친 만족일까.


나는 내 생각의 색깔은 물론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노래 가사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를 본다. 아기를 키우는 동안 섬집아기에서 위로를 받았고 병 후 회복기의 내 산길에는 자주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꽃길이 있었으며 아직도 합창곡이나 중창곡을 들으면 가슴이 환해지는 감동 이상의 것을 느낀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나는 침묵만큼 내게 맞는 음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음악에 대한 소화력만 좋다면야 가사가 있고 없고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라면 '꽃잎에 입맞추'는 가사에서 외설을 읽는 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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