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봉고 주점

by 장미

사람들 중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일에나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나서면 결코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생각 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누군가의 개입을 전혀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굳이 끼어들어 한 마디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에게 실망하다 절망에 빠져도 그런 사람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의 힘으로 이 지구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일 년 내내 잘 돌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자신감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덕목 중 하나다. 희망을 더욱 빛나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이 자신감이요 절망 한복판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는 눈 또한 자신감이 가진 장점이다. 살아내려는 힘, 견디는 힘, 겸손으로만 똘똘 뭉친 모지리 같은 사람이라도 그 겸손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대찬 그 무엇이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바로 자신감이다.





“거 봐. 나하고 같이 있다니까 이렇게 늦었는데도 제수씨가 전화 안 하잖아. 걱정 말고 한 잔 만 더 하고 가자.”에서부터 “우리 집에서도 내가 너랑 같이 있다고만 하면 아무 신경 안 써. 밤을 새도 괜찮다는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자신감을 넘어서서 타인의 자신감까지 북돋워 주는 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내 주변에만 그런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는 ‘당신은 절대 이런 말도 안 되는 언행을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다짐을 주곤 하는데 왜 남편 주변 사람들은 내게 자신들의 존재감이 내 남편보다 더 높다고 착각하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는 것일까.


“전화 좀 바꿔 봐, 아 참 내. 제수씨, 제수씨.”

전화기 너머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제수씨 숨넘어갈 일 없는데 왜 이렇게 숨 가쁘게 불러대는 것일까. 토요일 저녁, 일찍 들어오겠다던 남편이 밤 11시 반을 넘어 12시를 향해 바삐 달려가는 초침 소리에도 늦는 이유에 대한 변명 한 마디가 없어 결국 전화를 건다. 그러자 저편에서 더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자신과 통화를 하면 내 남편의 말없는 늦은 귀가에 대해 눈감고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지 그는 내게 어떤 대상일까 의문이 들었다. 한두 번, 한두 사람이던 젊은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넘어가 주곤 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음을, 첫 싹부터 싹 뽑아냈어야 했음은 새삼 떠들어댈 것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키 높이까지 자란 잡초를 베어내듯 잘라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중에는 번번이 제수씨 바꿔 달라는 친구도 있다. 남편과 둘이 만나 술 한 잔 할 때마다 그러지 않았자 싶다. 그만큼 그 친구와 막역하다는 증거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에게 그랬듯 그 친구에게도 네네 하며 웃으며 대했다. 그리고 방향을 바꾼 화살은 갈고리가 되어 남편에게 돌아가곤 했다. 도라는 건 어느 정도를 지키라고 있는 것, 남편에게 전화를 넘기라며 제수씨를 외치는 전화기 너머로 한 마디 명확하게 그리고 우렁차게 날렸다. “**씨가 우리 집에 오겠대? 우리 집에 와서 뭘 어쩔 건데. 내 남편은 당신이잖아. **씨가 내게 뭔데? 내 두 번째 남편이야? 나 **씨랑 결혼한 여자야? 왜 매번 **씨에게 전화를 넘기려는 거야?” 남편이 지금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씨는 남편과는 둘도 없는 사이이다. 우리 가족의 일이라면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귀청을 때린 내 말은 그에게 충분한 배신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후 그 친구는 내가 남편과 통화하는 중에 제수씨를 부르거나 자신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누구의 어떤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던지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그 친구는 내 말이 주는 의미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편할 것이 분명했다.


몇몇 사람은 여전히 전화로 나를 바꿔 달라기는 하지만 이제 남편은 누구를 바꿔줘 가며 술자리를 연장하는 일은 거의 거두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제가 생겼다.





“당신에 대해 다 말해 줄 수도 없고 참 난처하네.”


약속이 있다며 잠시 내려갔다 오겠다는 남편이 내게 흘린 말이다. 뭐지?

"요즘 주차장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장난 삼아 던지는 내 말에 남편 역시 가볍게 응수했다.

“응, 사귀는 사람 있어.”

세 시 반에 나간 남편이 다섯 시 반이 되도록 오지 않는다. 나이 든 남자 둘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빠져 있을 시간을 훼방 놓지 말자, 같은 동에 사는 사이라니 내 이미지 관리도 필요하겠지 싶었다. 6시 5분 전에 들어온 남편의 전달 사항이 걸작이다.


“글쎄, 그 친구가 나하고 술 한 잔 하겠다니까 그 부인이 찌개까지 끓여 대령하셨잖아.”

“그럼, 그 집에까지 가서 술을 마셨단 말씀?”

“아니, 그 친구 차에서.”

말문이 막혔다. 두 사람이 수저를 찌개 냄비에 담근 채? 코로나 19로 온 지구가 엄중한 이 시기에?


“봉고야, 그 친구 차가. 운전석하고 조수석 사이 물품 보관함 위에 찌개 냄비 놓고 소주 한 병 나눠 마셨어.”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아서 몇 시간씩이나?”

“그냥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지 뭐. 고생 많이 했더라고. 어려서부터 힘들게 지내온 이야기들. 집안의 가장이 된 우리 형들이 겪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 말이야.”

“지난번 짐 정리할 때 도자기 잔 두 개 챙겼던 이유도?”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는 이들이 두 남자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 속에서 진행되는 내용과 무관하게 지금의 나처럼 폭풍 대소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지독한 이기심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대접받았으니 당신도 대접해야겠네요. 하지만 절대로 집으로는 안 돼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봉고에서 마시도록 할게. 찌개 같은 것도 걱정하지 마.”

남편이 약간은 가엾어 보였다. 한 사람의 마누라는 찌개까지 끓여주며 술 한 잔 나누라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의 마누라는 찌개는커녕 술자리로 인한 작은 치다꺼리조차 미리 대침을 놓아 방어한다.

“대신 저 양주랑 집에 있는 안주 다 갖다 드세요. 단 한 번에 딱 한 잔씩만.”

“알았어.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런데 말이야, 웃기는 게...”



그 집에선 13층 아저씨라면 이제 손자까지도 다 안대. 그 집 식구들은 내가 마음에 든다는데. 내가 좋대.

그래서 나하고 있다고 하면 식구들 누구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대. 오히려 환영한다는 거야. 난 그 사람

외엔 그 집 사람들 얼굴 하나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사람 당신에게 혼날 사람이야. 자기하고 있는

걸 아니까 이렇게 어두워졌는데도 당신이 전화하지 않고 기다리는 거라던데.





도대체 왜 이러세요?

난 아직 한마디 말도 나눈 적 없는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냐구요?

누구세요?


우리 동 주차장에 봉고 주점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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