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둘째 생일이다. 이번에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코로나 19가 더위와 상관없이 확산일로다.
미역국과 닭백숙 등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 부치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바빠졌다. 기왕 부치는 김에 뭘 더 보낼 건 없나 머릿속을 뒤졌다. 이틀 전 사다 두고 잊어버린 부추 생각이 났다. 싱싱하던 잎 몇 개가 누런색을 띠기 시작했다. 재빨리 다듬기 시작했다. 부추 좋아하는 둘째에게 부추 겉절이도 함께 보내면 되겠다.
미역국을 끓여 식히면서 부추 겉절이를 하면서 버섯 전에 전복 다듬어 간장 붓고 살짝 끓이고... 냉동실과 김치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히고... 반찬을 다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오후 1시다. 아침 식사 후 시작해서 점심 식사 때까지 부산을 떤 것이다. 엄마 아빠 휴가비라며 둘째가 카톡으로 봉투를 보냈다. 남편 회사에서도 휴가비가 나온다는데, 월급 받아서 이렇게 엄마에게 보내면 저 쓸 게 뭐 있을까 싶다.
점심을 먹을까 하다 배고픈 것도 모르겠어서 마트로 달렸다. 스티로폼 박스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천도복숭아와 버섯, 미역을 들고 채소 코너에 들렀다. 채소 코너 언니가 흔쾌히 스티로폼 박스 두 개를 건네준다. 들고 가기 편하라고 친절하게도 끈으로 묶어주기까지 한다.
"뭐하시게?"
"애들한테 반찬 좀 보내려고요."
"맞아, 여름엔 이게 좋아요.'
"여기서 산 버섯도 볶았어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또 오세요."
집에 와 스티로폼 박스를 씻어 물기 빠지도록 세워 두고 그제야 뒤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반찬은 많이도 만들었는데 달랑 오이지무침 하나 놓고 허겁지겁 창자를 채우듯 점심을 먹어 치웠다.
물기 빠진 스티로폼 박스에 두 딸에게 보낼 반찬들을 갈라 넣는데 '택배요' 소리가 들린다. 내다보니 큰 감자 상자다. 안사돈께서 이번엔 수미 감자를 한 상자 보내셨다. 얼마나 무거운지 끙 소리가 절로 났다.
스티로폼 상자 두 개를 어떻게 우체국까지 가지고 가나? 들어보니 들린다. 거리가 좀 있는 우체국까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카트를 꺼내기 싫어 채소 코너 언니가 묶어 주었던 끈으로 스티로폼 박스를 묶었다.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를 벗어나자 무거움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되돌아오기엔 너무 늦었다. 우체국에 도착했을 땐 팔이 빠져나갈 듯 뻣뻣했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게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힘들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일을 사서 고생이다. 뜬금없이 친정어머니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힘든 것조차도 어머니는 복이라 했다.
"다 니 복이다."
우편물을 부치고 딸들에게 톡을 보냈다. 감사하다고 답이 온다. 보낸 음식을 먹지 않고 보관하다 상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정성 들여 만들어 보낸 음식을 버리지는 않을까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집에 와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나니 다섯 시가 넘었다.
딸들은 어떨까? 사 먹으면 된다는 딸들에게 나는 왜 굳이 이 더운 날 생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이렇게라도 가족들에게 확인받고 싶은 것일까? 둘째가 휴가비 보낸 것도 안사돈께서 감자를 보내신 것도 어머니는 말씀하실 것이다.
"그것도 다 니 복이다."
복 받았으니 갚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뼛속까지 듣기 좋은 말, 다 니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