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딸들과 사위는 용돈과 선물을 보내왔다. 남편도 나름 거금을 건넸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 마트에 다녀오는 외엔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 지낸 지 벌써 만 8개월이 지나고 있다. 이러다 말겠지, 곧 괜찮아질 거야, 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이까짓 바이러스쯤이야 했던 생각과 말들은 인간의 자만에 다름 아니었음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의술은 발전에 비례하여 여전히 싸우며 연구해야 할 균이나 바이러스는 새로 나타나고 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나 이러다 말겠지 등의 말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희망을 주던 생각이요 말이었으나 현재는 희망고문으로 몰아가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여고 미술 시간에 붓을 놓은 이후 딸들의 미술 재료를 구입해 주는 외엔 미술과는 무관하게 살았으니 실로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매번 생각만 하다 끝이 나곤 했다. 그때마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따라왔고 일과 취미 중 나는 늘 경제성 있는 쪽을 택했다.
그 일이 내게는 2019년 11월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몇 개월 전부터 우울했다. 그러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어머니 이야기를 써 볼 좋은 기회로 삼자고 다짐했다.
12월 1일부터 매일 어머니 이야기를 적어 내렸다. 세상 뜬 지 16년이나 지난 어머니를 어제인 듯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울고 웃었다. 그러는 중에 어머니와 나 사이에 세워져 있던 두꺼운 장벽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쓰러졌다.
어머니 이야기를 다 썼을 무렵 텔레비전에서 한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 끝의 집 - 카르투시오 봉쇄 수도원'이라는 가톨릭 성직자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머니의 삶은 세속에 있었으나 봉쇄된 바와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쓰는 말미에 수도원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가운데는 세속의 수도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릴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한 달쯤 후인 1월 21일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고독과 침묵의 삶이 일상인 성직자 대상 봉쇄 수도원에서조차 자신을 고양킴과 동시에 수도에 필요한 과정으로 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만연한 세속의 수도원에는 봉쇄만 있을 뿐이다. 침묵과 사유는 일정 부분 나의 것이기도 하다. 즐거운 일은 아니었으나 코로나 19에 대한 정부의 어떤 조치가 있기 전에 스스로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그러던 중 점만 찍어 두고 오랜 기간 미뤄왔던 그림 프로그램을 찾았을 때의 내 기분이란 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림 프로그램을 찾은 것만도 감사할 일인데 무료란다. 그림을 배우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할 수는 없었기에 내게는 그야말로 횡재였다.
생일 미역국을 끓이는데 결혼 전 내 생일을 깜빡 잊은 어머니께 투정 부리던 나의 치기가 오버랩되었다. 추석 일주일 전이니 추석 장만하느라 바쁜 어머니는 두 번 정도 내 생일을 까맣게 잊었었다. 입을 댓 발은 내밀고 "엄마는 어떻게 딸 생일을 까먹을 수가 있어?" 하며 어머니를 닦달했다.
그럼에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만 예순여섯이 되도록 살고 있으니 이 또한 복이다. 어머니께서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다 '니 복'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용돈과 선물 보내주는 딸과 사위도 있고 그동안 하고 싶은 것 못한 아내에게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것 있으면 좋은 것으로 사 쓰라며 돈을 건네는 남편도 있다. 불만이라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고독과 침묵을 강요하는 코로나 19로 인한 이 세속의 봉쇄로 인해 새삼 많은 것을 깨닫고 있음을 느낀다.
그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내가 알지 못했던 미술 일반에 관한 이론 또한 배우기 좋아하는 내게는 소중한 내용이다. 사물을 내가 보고 싶은 은 대로 보던 시력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폭넓고 깊은 시력을 갖게 된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자세히 관찰하고 그리는 과정을 통해 내가 쓰는 글의 모순점도 보다 더 정확하고 상세하게 내 눈에 들어오리라 믿는다. 예순여섯의 생일을 지나며 1년 후인 예순일곱의 생일을 기대한다. 그때가 되면 친한 이웃들에게 내가 그린 소박한 그림을 넣은 작은 액자라도 하나씩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현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너와 비교해서 나아졌다면 발전한 것이라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이 봉쇄라 할지라도 내 발전을 위해 쓰면 된다. 봉쇄에게 고맙다고까지야 할 수는 없지만 이 시기를 잘 이용하기로 한다. 무엇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면 모두가 영양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