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안에 엄마 있다

by 장미


더 잘 수 있으면 좋을 시간에 깼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었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하면서 남편의 교육도 다시 이틀에 한 번 꼴로 받게 되었다. 오늘은 교육이 없는 날이니 남편은 늦잠을 잘 것에 틀림없다. 이렇게 일찍 눈뜬 날은 먼 데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7시 무렵이면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둘이 먹는 아침 식사를 혼자 슬쩍 먼저 먹어치우기도 그렇다.


남편은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본인이 충분히 자고 난 후에도 뒹굴거리다 일어날 시간이 되어야 일어날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과 아침 일찍이라기보다는 새벽에 깨는 아내 사이, 이 고요의 신새벽과 마주하는 시간은 홀로 나만의 시간을 갖기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우렁각시처럼 별것 아닌 일들을 쓱싹 해 치우는 것도 해볼 만한 좋은 일이다.





김치 냉장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큰 김치통에는 먹다 남은 알타리김치가 스무나문 개가 남아 있다. 작은 김치통들에는 갓김치가, 무생채가, 오이지가 역시 어디 갖다 붙여도 괜찮을 정도씩 들어있다. 비닐봉지에 조금씩 남은 것들을 각각 담아 큰 알타리김치 통에 합석시켰다.


김치통들을 꺼내고 난 빈자리에 새로 담근 알타리김치 통 자리를 잡아주었다. 작년 김장김치 한 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올 김장은 배추를 몇 포기나 사야 할까 헤아려 본다. 깜냥에 다른 해처럼 배추 열다섯 포기를 산다면 작은 냉장고까지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꾸역꾸역 밀어 넣지 말고 얼음 풀릴 때부터 새 김치를 담가 먹을까도 생각해 본다.


엄마는 어떻게 지금 내 나잇적에도 백 포기씩이나 김치를 담갔을까. 식사 때 보면 정작 엄마 입에는 김치 몇 쪽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배추김치며 알타리김치, 동치미에 백김치, 깍두기 등을 아우른 김장을 한 이틀이면 쓱싹 해치우곤 하셨다. 이웃 아줌마들의 우스개와 웃음소리는 말없는 엄마에겐 그야말로 온몸의 모공을 다 열어젖히도록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담근 김장김치를 자식들에게 싸 보내느라 엄마는 손발은 물론 마음도 한가할 틈이 없는 초겨울을 보냈다.


엄마도 나처럼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족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궁금해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좀 물어봐 둘 걸 그랬다. 나는 엄마에게 다정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매정한 딸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더불어 엄마와 딸 이전에 같은 여성으로서의 죄스러움이 어제보다 한 치 더 자라 오른다.


보고 배운 대상이 엄마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음을 김치통을 씻으면서 확인하는 새벽이다. 가족들이 단잠에 빠져 있는 새벽, 엄마의 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깨곤 했다. 뭔가 정리하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찬물을 만질 때면 엄마 입에서 흘러나오는 스으 스으 소리와 동동동 빠르게 움직이는 엄마의 발걸음 소리까지 귀에 쏙쏙 심으며 잠든 척 누워 있다가 결국은 일어나 조용히 책을 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막내 여동생과 할머니가 잠시 뒤척이다 다시 잠에 빠졌다.



photo-1597781571094-bd44b4a822fa?ixlib=rb-1.2.1&ixid=MXwxMjA3fDB8MHxzZWFyY2h8Mjl8fG1vdGhlciUyMGFuZCUyMGRhdWdodGVyfGVufDB8fDB8&w=1000&q=80




얼마 전 첫째와 전화기 너머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내가 엄마 딸인 건 맞네. 사무실 정리할 때 보니 다 죽은 줄 알았던 스투키와 산세베리아 옆구리에서 작은 새순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때 정말 깜짝 놀랐지. 죽은 줄 알았던 아이들이 살아있는 데 놀랐고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그 놀라움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닌가 하는 것과, 내 안에 그런 느낌이 살아있었나 하는 것 등이 아주 번개처럼 스쳐가면서 거기 우리 엄마가 등장했거든."


"꽃 피어 봐라, 마음이 춤을 추는데 아주 미친다. 이뻐서 새벽에 깨서도 들여다보면서 날새는 줄도 몰라요."


"엄마가 화초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것 같아요. 엄마랑 같이 지낼 땐 꽃 피었다고 와서 봐 달라고 하면 엄마 부탁이니 반의무적으로 한 번 삐죽 '이쁘네' 하고 말았었는데 내 안에 정말 엄마가 살아서 나를 조종하는 줄 알았다니까. 어느 순간 '내 안에 엄마 있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딸의 말에 웃었다. 내 안에 내 엄마 살아있음을 나는 왜 딸의 말을 듣고서야 깨닫는 것일까. 아끼고 닦고 언제 소용될지 몰라 못 버리고 쌓아두는 것이 나도 내 엄마를 꼭 닮았다. 일구고 가꾸고 작은 풀 하나에도 감탄을 잊지 않았던 엄마가 내 안에 있다.


photo-1596437398267-a5184cc54f57?ixlib=rb-1.2.1&ixid=MXwxMjA3fDB8MHxzZWFyY2h8NzR8fGdyYW5kbW90aGVyJTIwYW5kJTIwZGF1Z2h0ZXJ8ZW58MHx8MHw=&w=1000&q=80



이 새벽, 일찍 맑아진 머리로 책보다 먼저 살림살이에 마음을 쏟는 것도 내 안의 엄마가 하던 일이다. 내 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가족을 챙기던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엄마는 아직 내 안에 살면서 "딸아, 너도 그리 하는 게 옳지 않겠니?"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늦게라도 내 안의 엄마를 깨워 말을 건네 본다.


"엄마, 내 안에 자고 있는 엄마, 일어나 보세요. 너무 늦게 깨워서 미안해요. 날씨 추우니 옷 잘 여미고 다니세요."


난데없는 경어와 뜬금없는 걱정에 엄마는 나이 먹은 딸년이 누구에게 말을 건네나 분명 주위를 돌아봤을 것이다. 당신에게 건네는 경어요 걱정인 줄 짐짓 알아차렸으면서도 뒤늦게 철든 딸년을 즐겁게 해 주려는 심사에서 나온 장난기임에 틀림없으리라.


세상에서 당신 딸이 가장 잘난 딸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믿음이 육화 되어버린 것도 모르고 나이 들어가는 새벽이다. 한 번도 딸을 호되게 야단칠 줄도 몰랐던 엄마가 거기 계시다.








keyword
이전 02화2. 장미 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