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이 질문은 내가 나에게 이미 던졌어야 할 질문이다. 그에 대한 답변 또한 막힘없이 토해 낼 정도는 돼 있었어야 한다. 내가 지금도 글을 쓴 후 잠가두거나 잊어버린다면 별문제겠지만, 이순의 절반 고개에서 꿈으로만 남았던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 한 번 던져 본 적 없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이 너무나 모호해서 빨리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음은 더더욱 부끄럽다.
누구나 자신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산다.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그중 나는 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알게 되었다.
기본기 없이 가난만 펼쳐지던 나의 미술 시간
초등학교 2학년 미술 시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오늘 미술 시간은 교실 밖 풍경 늑목 그리기라고 하셨다. 체육 수업 준비 중인 아이들이 늑목에 매달려 있었다. 옆 친구들이 늑목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색 크레파스로 세로로 가느다란 몇 줄을 그려 늑목의 기둥을 세우고 역시 가느다란 하늘색 가로줄을 몇 개 그려 늑목 가로대를 완성했다.
친구들이 그림을 거의 완성해 갈 무렵 나는 늑목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게 늑목의 막대들은 하늘색 크레파스가 한 번 쓱 지나가면 만들어지는 가느다란 막대기가 아니었다. 손에 쥐면 쥐는 맛이 느껴지는 분명 두께가 있는 막대였다. 늑목의 기둥인 하늘색 세로 막대를 두께를 크게 주어 그렸다. 그리고 가로 막대도 가느다란 줄 모양이 아닌 두께를 가진 모양으로 그렸다. 늑목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도 그려 넣었다. 늑목 가로 막대 이쪽 아이 모습은 뒷모습을 그리고 가로 막대 저쪽 아이는 막대에 간간이 가려져 있는 얼굴과 몸체를 그렸다.
크레용만을 쓰던 내가 그날은 크레파스를 들고 있었다. “엄마, 크레파스 한 번만 사 줘. 크레용은 잘 칠해지지도 않고 밀려서 그림이 안 돼.” 쓰던 크레용 그냥 쓰라고 엄마가 말했다면 나는 엄마 말에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며칠 후 같은 반 남자아이가 교실 앞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야, 장미. 니 그림 교장실에 붙었어. 늑목 그리임. 한 번 가 봐. 내가 지금 보고 왔어."
나는 교장실에 가지 않았다. 내 늑목 그림이 교장실에 붙었는지 확인하러 가는 건 낯뜨거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정물화 그리기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1등과 2등에게 상을 주겠다는 선생님 약속이 있었다. 등수는 반 친구들의 거수로 가렸다. 친구들은 내 그림을 1등으로 뽑았으나 미술 선생님은 친구들이 2등이라고 뽑은 그림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선생님은 내 그림에는 기본기는 없고 기교만 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은 두고두고 무슨 일을 하든지 기본기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큰 교훈이 되었다. 그때 방과 후 미술반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다.
65세를 앞둔 어느 날 여전히 기본기도 없이 나는 나를 위해 화방에 들렀다. 나를 위해 새로운 미술 연필 세 자루와 작은 스케치북을 마련했다.
놀 땐 달리고 시험 볼 땐 걸어가는 체육
“다시 달려 봐.” 초등학교 4학년 체육 시간. 50미터 달리기. 조금 전 한 차례 달리기 후 숨 고르기 끝난 내게 선생님이 다시 달려보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달리는 것처럼 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힘껏 달렸다. “16초 7. 잘 안 달려지니?” 선생님의 눈에서 나를 안타까워하는 뭔가를 읽었다. 안타까워 하던 친구들이 말했다. “넌 놀 땐 잘 달리는데 시험 볼 땐 왜 걸어가니?”
6학년 담임선생님은 체육 시간이면 늘 몽둥이를 들고 계셨다. 그중에도 달리기 연습을 할 때는 호랑이가 따로 없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걸어가던 달리기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 체육 시험 당일엔 걱정했던 달리기까지 가뿐히 커트라인을 넘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체력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중에도 매달리기와 달리기는 최악이었다. 역시 연습뿐이었다.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는 더 많은 연습을 요했다. 연습 끝에 겨우 평균을 넘겼다.
나는 800미터 오래 달리기만은 누구보다 빨리 들어와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다 달리고 나면 어금니가 다 쏟아질 듯 아리던 800미터 오래 달리기. 1등으로 들어올 필요 뭐 있느냐고 친구들은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모르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거기 자라고 있었다. 내가 넘어서야 할 대상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노래를 부르는 건지 책을 읽는 건지
“장미, 일어나.” 나는 시골 학교 복도 쪽에서 두 번째 분단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일어섰다. 선생님 입에서 새어 나온 채 분해하지 않은 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선생님 얼굴은 그날 아침에도 검붉은 색이었다. “대한의 노래 불러 봐.”
백두산 벋어 내려 반도 삼천 리 / 무궁화 이 강산에 ...
"그만, 앉어.“ 다른 두 친구가 선생님의 주문에 맞춰 대한의 노래를 불렀고 두 친구 모두 잘 불렀다고 친구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장미 너는 노래를 부르는 거냐 책을 읽는 거냐?” 선생님은 손에 든 지휘봉으로 교탁을 탁탁 치면서 말했다. 음악 시간도 아닌 첫 수업을 시작도 하기 전 난데없는 대한의 노래와 함께 선생님의 유쾌하지 못한 어조와 지휘봉 두드리는 소리에 지휘봉으로 머리를 탁탁 맞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어두운 상황의 주인공이 아닌 한 오래 그 상황을 느끼려 하거나 견디려 하지 않는다. 때로 그 주인공조차도 가능한 한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날 아침 그 상황의 주인공이었고 몸 어딘가에 그 상황이 새겨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뇌리였을 수도 있고 모근이었을 수도 있고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기억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아침 대한의 노래를 부르다 앉으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가 노래를 못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정말 책을 읽듯 대한의 노래를 부른 것일까 생각에 잠겼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크레파스 하나 사 달라는 말도 결심이 서야 할 수 있었던 집안 경제 사정을 탓해 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두 번의 새 크레파스를 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한 번은 엄마가, 다른 한 번은 멀리 돈 벌러 간 아버지가 사 보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게는 내 그림이 교장실에 붙었고 반 아이들이 부러워했고 오늘은 정물화 2등을 해서 스케치북을 상으로 받았다고 말할 대상이 없었다.
체육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만 겨우 커트라인을 넘을 정도였다. 몸도 마음도 체육을 그리 탐탁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음악은? 만약 그날 아침 선생님이 내게 대한의 노래 한 번 불러보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나는 자신이 음치인 줄도 모르고 책 읽듯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 선생님께 감사한 생각마저 든다. 어떤 말이나 글, 일이나 사실 등은 그것을 접할 당시의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때로는 아주 먼 길을 돌아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문학도 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보다 깊어졌다. 가끔 접하는 글들 중에는 내 사고력을 의심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글들이 많다. 그 글들을 따라가기에 나는 너무 낡았다. 그나마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속해 온 것이 글과 관련한 일들이었다. 그러니 나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로 부족하나마 내 수준에 맞게 쓰는 일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글을 쓰는 이유가 좀 더 밝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어서 글에게 미안하다.
새벽 매미가 나를 깨운다. 일어나 앉아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이 끄적거림이 비밀일기에 묻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거나 나만읽기의 감방에 갇혀 숨죽이며 살다 가도록 방치하지 말라고 조곤조곤 타이른다. 음치에 몸치에 나를 표현할 도구가 따로 없는 내게 그나마 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로 글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