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호박을 읽다, 나를 읽다

by 장미

몇 해 전 여름 호박 철의 일이다. 반으로 잘라보고 속이 깨끗한가 확인안 뒤 이웃에게 건넸을 때 그 이웃에게서 돌아온 말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호박 속에 벌레 있을지 몰라 가운데 한 번 갈라봤는데 깔끔하네요. 드세요."

"아유, 요즘 호박이 얼마나 싼데, 한 개 5백 원이야."


호박을 받아 드는 그 주민의 손이 얼마나 소극적이었는지 호박을 건네는 중인 내 손을 거둬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집 현관문을 나서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가 서너 시간은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호박이 5백 원이 아닌 5십 원이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웃에게 돈이 아닌 내 정성이 들어간 싱싱한 호박을 건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웃에게는 내가 건넨 풋호박 하나에서 호박 시세 5백 원을 보았던 것이다. 서운함은 잠시, 다음 순간 생각을 고쳐먹으니 그 이웃의 말만큼 고마운 말도 없었다. 내가 아무리 정성껏 키운 호박이라 할지라도 상대에게 소용없는 물건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부분의 이웃은 내가 호박을 건넸을 때 그 정성을 받았다. "어머, 고마워. 잘 먹을게." "진짜 싱싱하다." "고생한 걸 이렇게 받아먹어서 되나?" 등등 나눠 먹으려는 내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호박 5백 원 운운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내 텃밭 작물 가꾸기에도 적지 않는 변화가 나타났다. 텃밭에서 키운 작물을 거둘 때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열무 솎았는데 먹을래?" "풋호박 땄어. 몇 개 보낼까?" "상추가 싱싱하다." 식으로 먹을거리를 내 수준에 맞춰 건네던 수고를 싹 거두었다. 내가 먹을 양 이하로 조금씩만 가꾸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어쩌면 내가 건네는 텃밭 작물을 나눠 받고 고맙다는 말을 건넨 이들 중에도 내 정성은 고맙게 받았지만 먹지 않고 버린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부터였다.





초가을에 거둔 호박 몇 개가 처치 곤란이었다. 껍질이 짙푸를 정도로 자란 호박은 잘라서 말리기도 하고 주먹 만한 어린 호박들은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도 하며 된장국에 넣어 끓여먹고 튀겨먹어도 봤다. 그러나 내년 봄 호박 씨앗을 묻어 햇 호박을 따기 전까지 다 소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다.


내가 키운 호박을 갈무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 주민이 고구마와 함께 호박 한 덩이를 보내왔다. 색깔 좋은 밤고구마와 둥글게 잘 자라다 누런 물 들기 직전 목숨줄이 잘린 검푸른 호박이었다. 조금만 더 자라면 씨앗도 받을 정도는 돼 보였다. 오래전 이웃 주민의 5백 원 호박이 번듯 스쳐갔다. 5백 원 호박은 내게 교훈보다 상처를 남겼다.


호박을 다듬다 보면 끈끈한 호박의 액체가 칼에도 손에도 묻는다. 제 살을 자르는 칼에 맞서는 호박의 소극적인 듯하지만 지극히 적극적인 대처다. 잘린 호박을 바로 맞붙여 두면 호박은 제 안에서 나온 이 액체로 한동안 잘린 자리를 딱 맞붙이고 있기도 한다. 줄기에 달려 있는 동안에도 호박은 상처가 나면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상처 치유에 필요한 물질을 내 보내어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울퉁불퉁 단단한 흉터가 남은 남은 자리의 속살은 다른 부위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 치유제가 바로 이 액체가 아닐까 한다. 우리 몸에 생긴 상처에 딱정이가 생기는 이치와 같다. 호박에서 나온 이 맑은 액체가 몇 해 전 5백 원 운운하던 이웃의 말로 인해 입은 내 상처를 아물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맑은 액체를 진물 혹은 호박의 피라고 부른다.


고구마와 호박을 받고 감사 인사로 작은 선물을 전했다. 그리고 그 검푸른 호박을 해 좋은 자리에 앉혀 두었다. 한 달 여가 지난 시점부터 햇살 받은 호박은 꼭지와 꽃진자리부터 늙은 호박처럼 누런 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12월 9일 아침 그 불그스레한 기가 호박 자신의 몸 반을 덮었다. 호박 옆구리에는 제대로 익지 않아 땄음을 보여주듯 약간의 잔주름이 생겼다. 호박 속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는 증거다. 호박 속에 애벌레가 살고 있었다면 호박에 이미 구멍이 났을 터다. 그리고 톡톡 튀어 겨울철 따스하기 그지없는 내 베란다 어디 화분들 사이에 숨어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 터였다.





어느 핸가 붉게 익은 호박을 열일곱 덩이나 거두었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해부터 시작되었다. 열일곱 덩이 호박 중 하나의 호박에 돗바늘로 찌른 것 같은 구멍들이 여럿 있었다. 구멍 있는 자리를 눌러보니 시들한 느낌에다 더 힘을 주면 쑥 들어갈 것 같았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낑낑 대며 씻은 호박을 갈랐다. 기절 직전까지 갔다. 순간 갈랐던 호박을 그대로 맞췄다. 호박은 자신의 맑은 피로 두 쪽으로 갈라진 몸을 하나로 밀착시켰으나 나는 호박 안에 득실득실한 흰색 애벌레들을 이미 보아 버린 후였다. 그중 몇 마리는 거의 천정까지 튀어 올랐다.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벌레였다. 이름인즉 호박과실파리애벌레였다.


호박 열일곱 덩이를 모두 갈랐다. 막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 호박 두어 덩이를 제외하고는 크고 탐스럽게 익은 호박일수록 벌레의 크기도 크고 수도 많았다. 호박 열일곱 덩이를 거두던 순간의 꿈을 곱게 접었다. 호박죽 쑤어 누구도 주고 누구와도 나눠 먹어야지 하던 소박한 겨울 소망이 호박과실파리애벌레의 등장과 함께 날아갔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호박과실파리애벌레는 호박과실파리 암컷 성충이 산란관을 애호박 과실 속에 박고 산란을 하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호박 살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호박에 봉지를 씌워 호박과실파리의 산란을 방제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양파망 정도의 구멍 크기를 가진 망으로 씌워서는 호박과실파리의 산란을 막을 수도 없으며 흰색의 종이봉지를 씌워야 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토양소독, 봉지 씌우기, 방충망 설치, 기피제 살포' 등의 방법도 호박과실파리의 공격으로부터 호박을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암꽃이 호박을 달고 나오는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주말 농부다. 또한 많이 키우지도 않는 가족 먹거리를 키우는 땅에 이것저것 약을 칠 수도 없다. 당분간 호박 심기를 자제하기로 했다. 동물의 세계에는 살아있는 애벌레 몸에 제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하는 곤충들도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호박에서 벌레가 튀어나온 일도 그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 기절할 만큼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햇살 좋은 날, 호박과실파리의 산란관 대신 산란관보다 더 날카로운 햇살을 안으로 받아들여 홀로 익고 있는 호박을 본다. 천천히 익어가는 호박에게서 나를 본다.


아직 풋내 가시지 않았던 호박이 천천히 익어가는 초겨울, 호박을 읽는다. 시나브로 나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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