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양이와 텃밭

by 장미

산 아래 텃밭에 창고용 컨테이너를 놓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을로 접어든 무렵의 그날 주말 텃밭은 볕은 좋았지만 쌀쌀하긷 했다. 창고 문을 열고 남편과 함께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속을 데우는데 '에옹' 하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 바깥쪽에 달아낸 농기구 보관용 보조 창고 쪽에서였다. 남편이 재빨리 다가갔다.


나도 커피잔을 든 채 다가갔다. 고물고물 새끼 고양이들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인기척이 두려운지 웅크린 채 덜덜 떨었다. 남편이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깨끗한 박스 안으로 옮겼다. 어디선가 어미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 후 다시 텃밭에 들렀다. 마침 첫째 생일 후여서 출산한 어미 고양이를 위해 남은 미역국과 새끼들에게 줄 우유를 조금 챙겼다. 짐을 내리자마자 우선 새끼 고양이들을 찾았다. 어미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남편이 새끼들 옆에 놓아둔 타월이며 장갑들이 본래의 위치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고, 창고 바닥에는 토한 듯한 강낭콩 몇 알이 흩어져 있었다. 배설물이 아닌 걸로 보아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새끼 고양이들 앞에 우유 담은 그릇을 놓고 입에 한 방울 묻혀 주었다. 그러나 새끼들은 애옹거릴 뿐 우유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편이 새끼 고양이가 담긴 상자를 햇볕으로 내다 놓았다. 나는 두부 팩에 미역국을 따르며 어미를 불렀다.

"야옹 씨, 미역국이야. 새끼들 낳느라 고생했어. 어서 와 먹어봐. 그래야 젖도 잘 나오지."

오늘 참깨를 털고 나면 몇 번 더 텃밭에 오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농기구 보관 창고에 뚫린 개구멍 보수도 하고 어미가 새끼들을 데려가기 쉽게 새끼들이 들어 있는 상자도 밖에 내어놓을 생각이었다. 어미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미역국이라도 한 모금 먹는 걸 보면 마음이 좀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미는 기척도 없다.


금세 점심때가 찾아왔다. 남편이 끓인 라면으로 속을 채운 후 짧은 해 탓하기 전에 누레진 팥 꼬투리를 땄다. 팥 꼬투리 몇 개를 땄을까, 남편이 급하게 그러나 조용히 나를 불렀다. 땅과 거의 같은 색의 어미 고양이가 덤불처럼 우거진 팥 포기들 사이에 모로 누워 있었다.


남편이 삽으로 어미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누워 있던 그 모습대로 삽에 실린 어미 고양이를 밭 가장자리에 묻었다. 어미를 묻어준 후 핏덩이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두고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미 고양이는 세상을 떠났고 졸지에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앞에 있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어미 고양이의 죽음이나 고양이 가족의 이별에 대한 슬픔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이는 생에 대한 크나큰 모순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날에도 나는 밥을 먹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볕에 둔 새 박스 안에서도 새끼 고양이들은 떨고만 있었다. 수건으로 덮어 주며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니 문득 세상 떠난 어머니가 떠오르면서 내가 본 여러 삶의 마지막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어미가 세상 떠난 줄도 모르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구나. 내가 같은 입장이었더라도 이 핏덩이들처럼 떨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마리라면 며칠 내가 키우다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세 마리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돌볼 자신이 없었다. 내 밭 내 창고 안에 들어온 목숨을 바라보며 남편은 유기동물협회를 검색했고 나는 이장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점심 먹을 때 가끔 산 쪽에서 어슬렁거리며 내려오던 고양이가 있었어요. 밥 몇 숟가락과 생선 가시 몇 번 나눠 줬을 뿐인데 우리 창고에 새끼를 낳았네. 세 마리씩이나. 지난 주말에 낳은 것 같은데 날이 쌀쌀하니 창고 개구멍으로 들어왔나 봐요. 문제는 어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거예요. 의논할 곳이 이장님 댁밖에 없네요."


며칠 전 고양이 구해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며 지금 바로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1분도 안 돼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이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단다. 남편이 새끼 고양이들이 담긴 박스를 바삐 차에 실었다.


고양이를 데리러 온 부부는 회색 새끼 고양이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모두 예쁘다고 세 마리 다 키우겠다고 했다. 회색이만 데려가면 나머진 어떡하나 안타깝게 생각했을 그녀의 마음씨가 투명하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야생이 아니에요. 누가 버린 고양이예요.' 새끼 고양이들을 데려가면서 그녀가 남긴 말이다.


새끼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 따뜻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니 세상을 떠난 어미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키울 깜냥이 못 돼 새 주인을 찾아주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마치 내가 엄청난 좋은 일을 한 듯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통해 헤어진 어미와 새끼 고양이들을 앞에 두고 어린것들을 어떡하나 내 걱정을 먼저 했던 데 대한 미안함도 덜었다.





다시 주말이 왔고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텃밭을 찾았다. 새끼 고양이들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이장댁의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세 마리 모두......" 고양이들이 내 가슴에서 훅하고 날아갔다. 새끼들이 우유를 줘도 물을 줘도 한 번 핥아보고는 고개를 돌렸단다. 새끼 고양이들을 데려간 지 사흘째 되는 날 전화를 걸어와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울먹거렸다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 다시 돌아봐도 그렇다. 가장 안타깝고 죄송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어미가 내 밭에서 몸을 풀었으니 내게 아기들을 맡기고 간 것일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 먹을 한 줌 푸성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잡초일지언정 함부로 다루지 않고 함께 산다며 마음이라도 넉넉한 척하던 나를 돌아보았다. 모두 입에 발린 말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와 텃밭은 전혀 별개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 해 나는 텃밭에서 말벌에 쏘이기도 하고 멋모르고 오른 이웃 산에서 만진 나무가 옻나무였던지 옻이 올라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면역력 약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작은소참진드기 이야기도 고양이 일 이후 부쩍 자주 등장했다.


텃밭 가는 일이 점점 두려워졌고 자연스럽게 텃밭 가는 횟수도 줄었다. 오래전에 심은 유실수에 열리는 열매만 따 먹고 더는 심지도 가꾸지도 않으니 입에 들어갈 것이 풍족하게 나올 리 없었다. 유기농 하겠다고 가을이면 왕겨를 실어 나르고 부엽토 날라다 퇴비를 만들고 온갖 액비를 만들던 일들이 옛이야기가 되었다. 연중행사처럼 밭에 들러보면 정성 들여 만들어 둔 액비 통들은 햇볕에 삭아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고양이 이후 텃밭을 5년씩이나 쉬었다. 아픈 기억은 희석되어가는 중이다. 새끼 고양이들은 나쁜 것을 먹은 어미의 젖을 이미 받아먹었음이 틀림없었다. 다시 내 밭에 고양이가 들어와 몸을 푼다면? 한 마리 정도는 품어줄 수 있을 만큼 아량이 생긴 것도 같은데 말이다.


다시 고양이가 내 텃밭에 드는 그런 날이 또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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