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Nov 21. 2021

그만한 값을 해야 들을 수 있는 말, 엄마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김장용 고춧가루를 빻아 왔다. 


그중 1kg은 고추장용으로 부탁했다. 지난해 담근 고추장이 제법 입에 맞아 베란다 볕 좋은 겨울철에 일찍 담글 예정이었다. 쓰고 남은 메줏가루를 냉동실에서 본 것 같아 메줏가루는 빼고 엿기름가루만 사들고 왔다. 냉동실에 있던 메줏가루는 메줏가루가 아니었다. 언제 적 것인지 모를 콩가루였다. 


메줏가루를 사러 다시 마트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판매 중인 고추장용 메주는 고추장 3~4근 용에 필요한 양이라 판매를 할 수 없단다. 메줏가루를 만들어 쓰기로 하고 돌아왔다. 일이 자꾸 늘어간다.





어제 저녁식사 후 압력솥에 콩을 씻어 담근 콩을 삶기 시작했다. 다 불은 콩을 삶을 때는 물은 한 컵도 많은데 대충 물 양을 맞췄나 보다. 압력 추 사이로 콩물이 넘쳐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흐른다.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엊그제 깨끗이 닦아낸 자리를 또 닦게 생겼다. 일을 또 하나 만들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압력추 주변을 닦아냈다. 


"소쿠리에 한 번 쏟아 물 빼는 게 뭐 어렵다고 고거 생략하려다 쓸데없는 일을 만들고 있네."


남편이 서둘러 등산 모임을 향해 떠난 다음에도 한동안 콩을 더 삶았다. 칙칙 거리며 콩물을 올리던 소리도 잦아들었다. 뜸을 들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압력이 다 빠지도록 기다렸다. 





색깔도 콩이 무른 정도도 잘 삶아진 듯하다. 먼저 청국장용으로 반쯤 덜어내 모시 주머니에 담고 짚 묶음을 꽂은 다음 여며 이중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남은 콩은 채반에 쏟았다. 고추장용으로 쓸 콩을 한 종지 덜어냈다. 삶은 콩 그대로 띄우며 말린 다음 갈아 쓰면 된다.  남은 콩의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다시 압력솥에 넣고 으깼다. 큼직한 도넛 모양 메주 하나 양이다.  


미리 준비해 둔 1인용 얇은 전기매트에 연초에 들어왔던 달력을 깔고 청국장용 스티로폼 박스와 고추장용 콩 메주와 도넛 메주를 차례로 올렸다. 따뜻하니 청국장은 잘 뜰 것이고 고추장용 콩 메주도 도넛 메주도 금세 표면이 꾸덕꾸덕 마를 것이다. 콩 메주는 달력 종이에 들러붙지 않도록 몇 번 뒤적여 주고 대강 모양을 빚은 도넛 메주도 토닥거려 주었다.




매트리스의 전기 코드를 뽑고 거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볕 쪽으로 옮겼다. 벌써 표면이 말라 있다. 콩 메주는 뒤적여 주고 도넛 메주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드려가며 모양도 단단히 빚어주고 구멍도 키워 주었다. 조금 더 마르면 짚을 깔아주고 잘 띄워주기만 바라면 된다.






계획했던 일이 마무리 단계다. 아침 6시 반부터 종종거렸더니 피곤하고 지친다. 어서 끝내고 쉬어야겠다.


 먹은 생수병은 물기를 완전히 말려 모아두면 쓸모가 있다. 


오늘은 고춧가루 보관용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고춧가루는 빻은 지 이틀이 지나는 동안 비닐 입구를 묶지 않고 펼쳐 두어 열기도 빼고 습기도 완전히 날렸다. 생수병 상부를 잘라 만든 깔때기를 생수병 입구에 대고 고춧가루를 담았다. 일단 생수병으로 네 개를 담았다. 베란다 서늘한 곳에 겨울 동안 보관했다 봄이 되면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나머지는 입이 큰 병에 담아두고 김장용으로도 쓰고 당분간 사용하면 되겠다.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저녁 쌀 씻는 일이 남았다. 후다닥 잡곡 몇 가지 섞어 저녁밥 준비를 했다. 훌쩍 오전 시간이 다 갔다.





딸들이 묻곤 한다.

"엄마는 아무 계획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금세 처리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내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딸들에게 들려준다.

"엄마가 되면 다 그렇게 하게 돼. 엄마란 말을 괜히 듣는 게 아니거든. 다 그만한 값을 해야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엄마도 있지 않겠니?"


하지만 나는  아기 둘을 낳은 후에도 가사일에는 두서가 없었다. 일단 꺼낸 부엌칼도 여러 가지를 다 처리한 후에 제자리에 넣어 둘 생각을 못했다. 한 번 쓰면 닦아 제자리에 꽂고 바로 다시 쓰기 위해  칼을 꺼내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서너 가지 나물 데치는 데만도 물을 끓여 쓰고 버리고 다시 끓이고를 반복했었다. 그러면서 손이 빠른 또래의 엄마들을 속으로 한없이 부러워했었다. 

'나는 언제나 이 두서없음에서 벗어나려나. 언제 저이들처럼 척척 주방 일을 할 수 있게 되려나.'


많이 늦었지만 그리고 아직도 더디게 발전 중이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주방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칼도 한 번 꺼내면 칼을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를 처리한 후에 씻어 제자리에 넣게 되었고 그릇 사용도 나물 데치기도 어느 정도는 두서없이 우왕좌왕 하던 시절에서 벗어났다. 오늘 일만 해도 예전 같으면 며칠을 꾸물거렸을 것이다. 그런 일을 오전에 다 마칠 수 있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장족의 발전이다.


남편은 이런 나를 과거의 나와 비교하여 칭찬인 듯 장난인 듯 놀리곤 한다.

"일취월장, 우리 마나님."


메주콩 마르는 냄새가 구수하다. 















작가의 이전글 이런 제안은 처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