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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14. 2022

너 복숭아지? 복숭아 맞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명월초가 볼품 없어진 봄이다. 몇 해 동안 새로 올라온 순을 따 먹기만 하고 다듬어 주지 않은 탓이다. 윗부분을 싹둑 잘라내고 아래쪽부터 새순을 받아 키우기로 하고 가위를 들었다.


어? 이게 뭐지?


길쭉한 잎에는 자잘한 톱니가 있고 언제부터 자랐는지 제법 자란 모양으로 미루어 풀이 아닌 나무의 포스가 느껴진다. 왠지 내가 원하는 아이는 아닐 것 같다. 싹이 올라오다 사그라져 버린 미라클푸르츠가 내내 아쉬운 터다. 그럴 리가 없다. 미라클푸르츠의 씨앗을 명월초 옆에 묻은 기억이 없다. 나눔 받은 귀한 씨앗이기에 빈 화분에 자리를 잡아 씨앗을 묻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클푸르츠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내심 기대를 품고 검색에 들어갔다. 미라클푸르츠가 아니다. 미라클푸르츠는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이 매끈하다. 잎도 이 아이처럼 지나치게 갸름하지 않고 조금 더 넓고 둥글다. 아무래도 내가 바라지 않는 그 식물체일 것만 같다.





어쨌든 명월초를 다듬고 정리하려면 이 아이도 어디론가 자리를 옮겨 주어야 한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바에 비춰 본다면 이 아이는 복숭아가 맞을 것이다.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잎에 응애가 잘 끼어 특히 베란다에서는 키우고 싶지 않은 식물 중 하나다. 응애를 없애가며 키울 만큼 내가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씨앗만 보면 흙에 묻기 시작할 무렵 손에 들어온 어떤인들 묻어보지 않았겠는가. 입안에 든 씨앗도 오물거려 씻은 다음 심게 됨은 식물 사랑 초반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일이다. 물론 사과와 복숭아 씨앗도 예외는 아니다. 사과 씨앗은 발아가 그런대로 잘 되는 편이었지만 복숭아는 발아가 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잎은 사과 잎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사과는 더 진한 초록색을 띨 뿐만 아니라 잎사귀가 이렇게까지 길쭘하지 않다. 복숭아도 발아가 되었었는지 어린 복숭아 잎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주변에서 본 복숭아 잎의 모양과 너무나 닮아 있다.


사과든 복숭아든 아무리 내가 원하던 식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고운 색의 얼굴을 내민 아이를 단숨에 뽑아내 버린다는 건 내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베란다 화분용 플라스틱 스푼을 식물체 옆으로 깊게 넣어 흔들었다. 뿌리를 건드리는 느낌 없이 단숨에 잘 들어갔다. 싹이 고정된 상태에서 살살 잘 흔들린다.


복숭아가 맞다. 실망이지만 이미 싹이 튼 복숭아나무가 들을세라 마음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뿌리가 반으로 갈라진 복숭아 씨앗 안에서 길게 자라 있다. 새싹 무렵엔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웬만한 공격에는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씨앗 껍질이 단단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홍산마늘 주아 몇 개를 심었던 화분 가운데를 헤집고 어린 복숭아나무를 옮겨 심었다. 홍산마늘 주아가 몇 개 싹이 텃지만 어린 복숭아의 성장세를 따라잡을 수는 없으리라. 


현재로선 다음 달 초나 되어야 텃밭 나들이 계획이 있다. 그때 심을 다른 씨앗들과 함께 이 어린 복숭아나무도 함께 데리고 가기로 한다. 내가 돌봐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에 비할까 보냐. 응애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고 바람과 비와 해가 복숭아나무를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울 것이다.




대꾸할 리 없는 어린 복숭아나무를 향해 골목대장처럼 한 마디 했다.

'복숭아, 너 복인 줄 알아라. 아무 데나 아무 씨앗이나 툭툭 던져두는 주인 마님 덕분이라는 거 잊으면 안 돼. 그러니까 마님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잘 자라면 되는 거야. 알겠니, 복숭아?'


대꾸할 리 없는 어린 복숭아나무가 감정을 자제하고 한 마디 하는 것만 같다.

'뿌리가 흔들리도록 후벼 판 후에 씨앗 껍질을 보고서야 복숭아인 줄 알아차리고도 잘난 척하기는... 잘난 적하는 데는 도가 튼 주인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 원치 않는 복숭아인 줄 알면서도 살아 잏는 나를 버릴 수 없는 그게 주인 여자의 천성일 수도 있으니까. 뽑아내 버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보란 듯이 살겠노라고 해 있는 쪽을 향해 벌써 몸을 구부리는 나를 보면서도 모른다는 말인가. 오늘 저녁엔 봄비 소식도 있던데 올 봄비는 맛도 못 보고 넘어갈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분홍 꽃도 피고 손톱만 한 복숭아라도 하나 달 수 있으려면 지금은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할 때라는 거 나도 다 안다. 그래도 한 마디는 아끼지 말아야겠지. 고맙소, 주인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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