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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11. 2022

다시 꽃들의 계절을 건너며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구름 낀 날이 걷히듯 아름다운 날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구름 낀 날이 환한 날에 비해 길게 느껴지는 건 사람 마음이 그리 느끼는 것일 뿐. 뚝뚝 떨어지는 꽃송이들 사이 마지막으로 얼굴 내민 군자란 꽃송이 하나, 삶이 버겁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 번 꽃은 영원한 꽃이다. 한 번 너는 영원한 너이 듯.



누군가 그랬다, 나이 든 여자들의 사진첩에는 꽃들만 수두룩하다고. 그리고 그 말은 입에서 귀를 통해 건너고 건너 나이 든 여자들 귀에도 들어왔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왠지 그 말은 나이 들지 않은 젊은 여자나 남자들이 한 말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또 한편 그 말은 나이 든 여자가 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꽃을 바라보는 나이 든 여자의 쓸쓸한 시선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말이기도 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자신의 어느 좋았던 한때를 꽃은 늘 품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말은 나이 든 여자들이 꽃 사진에 열광하는 모습을 그리 탐탁스럽게는 보지 않는 듯이 들리기도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다른 데는 관심 갖지 못하는 마치 평균 함량에 모자라기라도 한다는 양 말이다.


나이 든 여자들도 나이 들기 전에는 꽃이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꽃의 시절엔 누구나 저 말을 한 그 누군가처럼 생각할 수도 있음을 나이 들어서 깨닫는다. 숨쉬기가 힘들어질 무렵에야 걱정 없이 마시던 산소의 소중함을 알게 됨과 같이.


꽃들만 수두룩한 사진첩에 나이 든 여자들 중 한 나이 든 여자는 또 몇 송이의 꽃을 담는다. 저 홀로 꽃인 줄 알던 시절을 건너와 소실점으로 남은 과거를 돌아본다. 그제야 알게 된다. 세상에 꽃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쁘다 향기롭다, 내 취향이 아니다 등등 난무하는 느낌들은 그들의 것일 뿐. 한 번 꽃은 죽어서도 꽃이다.




둘레길을 걷다 꺾여 뒹구는 철쭉 한 가지를 만났다. 마른 길가에 버려진 물고기에게는 길 가는 나그네의 침 한 방울이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글이 있다.,며칠 후 큰 바다에 데려다주겠다는 나그네의 말처럼 공허한 약속은 없다. 꽃봉오리 물고 있는 철쭉 가지를 주워 들고 둘레길을 걸었다.


둘레길 난간 사람 다니는 쪽으로 삐죽 뻗어 자란 황매 한 가지를 만났다. 난간 밖으로 자리를 잡아 주려니 말을 듣지 않는다. 사람 다니는 길이 좋다는 듯 자꾸 삐져 나온다. 가자,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가자. 황매 한 가지를 꺾었다. 둘레길을 몇 바퀴 더 도는 동안 내 손의 온기가 이 꽃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작은 물병을 찾아 꽂았다.


철쭉과 황매의 조화, 오래전, 나이 든 여자가 꽃이었을 때 끼리끼리 모여 수다 떨던 꽃들이 생각났다.



하마 죽었을까? 절정의 꽃을 돌아보며 아직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며? 평생 웃고만 있을 꽃들의 사진첩이라도 한 번 들춰볼 때가 되었나 보다.


나이 든 여자들의 사진첩엔 꽃 사진밖에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꽃들의 계절을 건너며 한 마디 해야겠다.


우리가 꽃이다.

오늘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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