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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10. 2022

1일 1만 보 다시 시작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약 한 달 만에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초 걷기만 했을 뿐인데 이유 없이 왼 발목에 통증이 왔다. 일단 걷기를 쉬기로 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안정을 취했다. 지난해 7월 하순경 본격적으로 시작한 1일 1만 보 걷기를 김장하는 날 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쉰 적이 없었기에 발목 통증으로 걷기를 쉬는 일에 약간의 걱정도 앞섰다. 다행히도 침 두 번 맞고 한의원에서 처방해 준 약 복용 후 잊어버릴 정도로 통증이 가라앉았다. 


마침 그 무렵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1일 2시간. 45분 일하고 15분 쉬고 다시 45분 일하면 끝이 나는 일이다. 짧은 시간 동안 하는 일이지만 처음 해 보는 일이라 한 2주 동안은 매일 어깨와 목에 파스를 바르고 붙였다. 3주째에 접어들면서 붙이는 파스를 졸업했다. 4주째 접어들면서 붙이는 파스와도 바이바이를 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피곤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극히 피곤할 때 외엔 누워 본 적 없는 몸을 따끈한 자리에 눕히고 휴식을 취했다. 누워 있는 사이 나도 모르게 잠에도 빠져들었다. 짧은 휴식 후 몸이 다시 가뿐해졌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그 짧은 시간의 노동 덕분에 밤에 잘 잘 수 있음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루 2시간의 육체노동이 주는 좋은 점 이면에는 1일 1만 보 걷기를 중단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발목 통증은 씻은 듯 사라졌으니 몸이 일에 적응하게 되면 다시 1일 1만 보를 시작하리라 내내 다짐하고 있었다. 


알람 소리보다 일찍 눈을 뜬 바쁠 일 없는 토요일 아침, 주섬주섬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양치를 한 다음 물 한 모금 마시고 걷기에 나섰다. 어떤 상황에든 어느 정도는 몸이 적응해 준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경비 아저씨께서 하얗게 내려 갈색으로 변해 가는 목련 꽃잎을 쓸고 계셨다. 걷기에 열심일 때 뵈었던 주민 두 분이 언제나처럼 열심히 걷고 있었다. 목례를 나누었다. 한 달 동안 아무 일이 없이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40여 분 동안 4천6백 보를 걸었다. 오후에 마트에 걸어서 다녀와 보니 7천8백 보가 넘었다. 잠시 중단했던 일도 이렇게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구입한 물건을 정리한 다음 어깨도 젖혀 보고 스트레칭도 그동안 못 했던 것까지 보충할 요량으로 약간 과하다 싶을 만큼 해 봤다.


생각한 것을 생각으로만 끝내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는 데 스스로 고무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일요일 아침, 어제 스트레칭에 약간의 무리가 있었나 보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고 눈을 떴다. 매일 같은 시각에 눈을 뜨지만 오늘은 창이 어제보다 더 환하다. 하루 전보다 낮이 길어지고 있고 오늘은 그 중 가장 낮이 긴 아침이다. 하지만 눈은 떴는데 이리 엎어졌다 저리 누웠다를 반복한 후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어깨와 다리가 뻐근하다. 실연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을 수 있고 숙취는 해장술로 푼다는 말이 떠오른다. 몸의 피곤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보니 그런대로 움직일 만하다.


역시 양치 후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밖으로 향했다. 오늘 경비 아저씨는 어제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셨는지 소복한 목련 꽃 무더기가 만들어져 있다. 몇 걸음 옮기자 어제 보았던 이웃 두 분이 손을 흔드신다. 회색 작은 나방 한 마리가 내 앞으로 날아오다가 다른 길로 사라졌다.


우듬지 꽃들은 이미 지고 아래쪽 가지에 남은 흰 목련 꽃들이 낮은 바람에 흔들렸다. 그 흰 목련을 배경 삼아 고운 자목련 꽃들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는 내 또래 여자가 눈에 띄었다. 어쩌자고 목줄을 아예 풀어놓은 채 반려견들을 데리고 나왔을까. 나는 걷기가 거의 끝났으니 집으로 들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저 이는 목줄을 멘 상태로 반려견을 데리고 나왔을 때도 반려견이 배변을 봤을 때를 대비한 어떤 것도 들고 나온 적이 없었다. 그녀의 반려견들은 화단 안쪽 깊숙한 데를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녔다.





어디선가 일찍 핀 라일락이 향기를 보내온다. 가늘지만 날카로운 향기에 목줄 없이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그녀에 대한 내 불만이 가라앉는다. 그녀 반려견들의 똥을 먹고 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기 시작했을 수도 있는 저 비비추들은 더 고운 자주색 꽃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달 만에 계단을 걸어올라 오며 생각한다. 알바를 하는 동안엔 주중 1일 1만 보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주말만이라도 실행에 옮기도록 하자. 더불어 스스로에게 부탁한다. 부디 보이는 것만이 아닌 그 이면까지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는 심안을 가진 인간이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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