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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y 23. 2022

찰나처럼 봄날이 간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봄은 정말 후딱 가버리는 것일까.


봄나물들을 데쳐 말리고 간장초절임 등으로 정리하고 나니 봄이 다 가버린 느낌이다. 마른 삼잎나물을 정리하는데 남편이 표고 한 봉지를 내밀었다. 표고까지 정리하고 나면 올 봄나물은 끝이다. 


예전에는 표고는 텃밭 마을 표고 작업장에서 B 품으로 2만 원어치 정도를 사곤 했다. 2만 원에 마대 한 자루의 표고를 살 수 있었으니 얇게 저며 말려두고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몇 해 동안은 텃밭에 자주 가지 않는 데다 표고가 세슘을 가장 잘 흡수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표고도 조금씩만 사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먹을 사람이 준 것도 표고를 조금씩 구입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





"이 정도면 적당할 것 같아서 만 원어치만 샀어요"

"약간 부족해 보이긴 한데 말려두고 잊어버려서 못 먹고 버리게 되는 것보다는 낫지요."


표고는 깔끔했다. 흐르는 물에 살살 세 번 헹구어 물이 빠지도록 소쿠리에 담아 두었다. 표고 슬라이스는 남편 몫이다. 부실한 내 손목은 당근 하나 채를 썰고 나도 둔한 통증이 오기 때문이다. 저민 표고는 널찍한 채반에 펼쳐 말렸다. 간장초절임용 표고는 한나절 정도 말리고 보관해 두고 그대로 사용할 표고는 바짝 마를 때까지 한두 번 뒤적여 주면서 채반에 그대로 두었다 바짝 마르면 따로 갈무리하면 된다.


남편의 칼질 솜씨는 내게 언제나 엄지 척을 부를 정도로 얇고 고르다. 한석봉 어머님하고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남편과 나 두 사람만 놓고 봤을 땐 나무랄 데 없는 최고의 솜씨다. 3/4 정도는 간장초절임을 하고 나머지는 말려두고 그때그때 음식에 넣을 용도로 나눴다.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도 없다는 5월 어느 날의 햇볕에게 전했다.


"고맙다, 날 좋네."

햇볕도 분명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했겠지만 청력이 약해 햇볕의 응답을 듣지 못한 내 귀를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이대로 받아주고 다독거리며 사랑하는 것도 살아오면서 터득한 나에 대한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간장초절임 음식은 하루만 지나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어제는 남편의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혼자만의 저녁식사를 위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좋아하는 간장초절임 나물 고르기에 들어갔다. 어느 것을 먹을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동댕동딩동...... 내 마음에 드는 나물이 나올 때까지 딩동댕동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내 입에 맙는 나물이 걸리게 되어 있다. 밥은 한 술 정도니 아무리 내가 즐기는 식초 들어간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을 수는 없다. 


올봄 마지막으로 담근 표고가 간택되는 순간이다. 이웃에서 나눠주었던 백화고의 맛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우선 표고부터 몇 개 접시에 올렸다. 두 번째로 간택된 나물은 담근 지 이틀 지난 고추고리부추간장초절임이다. 두 줄 꺼내 잘랐다. 식초와 간장에 절여진 부추가 숨이 죽어 고추고리에 끼울 때와는 달리 헐렁해졌다. 더 올리면 염분 과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고추장멸치볶음의 멸치 몇 개와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반숙달걀장조림도 하나 꺼내 반으로 갈랐다. 불 끄는 시간을 놓쳐 반숙에서 완숙 쪽으로 많이 치우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먹을 만하다고 앞으로 더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격려한다.


표고는 약간 양념이 덜 밴 상태인데 90점 정도는 되겠다. 고추고리부추간장초절임은 혹시 부추가 질기게 변하지는 않는지 먹어본 후에 알려달라셨던 이웃님의 댓글이 기억난다. 뿌리 쪽 부추는 아삭아삭 맛있고 잎 끄트머리 부분도 일반 부추겉절이의 부추와 다르지 않다.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는 소리가 뿌리 쪽에 비하면 떨어지긴 해도 역시 아삭거린다. 고추고리부추간장초절임은 처음 만들어본 음식임에도 내 딴에는 성공이다.






저장용 슬라이스 표고도 만 하루 만에 바짝 말랐다. 마른 표고는 아래쪽에 키친타월을 깐 양파망에 담아 바람 잘 통하는 자리에 걸어 두었다. 양파망에 키친타월을 깐 이유는 공기도 통하고 혹시라도 표고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오늘 이른 아침 마른 슬라이스 표고를 양파망에 담고 나니 올봄 해야 할 먹거리 관련 일은 대부분 끝낸 듯하다. 하늘에는 얇은 구름이 끼어 있고 바람은 잔잔하다. 며칠 사이 낮 기온이 부쩍 오른 이 시기에는 구름 약간 낀 이런 날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그늘에 있어도 차가운 기운이 없고 볕에 나가도 심하게 움직이지 않는 한 땀방울이 주르르 흐르지도 않는다.


왔나 싶어 오래 껴안고 반기려니 어느 결엔가 바람 스치듯 지나가는 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특히 저장해 두고 먹을 여러 가지 나물들을 준비했다. 어쩌면 함께 오래 지냈으면 싶은 사람은 아무리 오래 함께해도 아쉬운 느낌을 남기듯 우리가 좋아하는 봄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지속됐으면 싶은 계절에 먹거리 준비하느라 꽃은 하루 이틀 차례로 찾아와 시력만 흩트려 놓고 져 버렸다. 뒤이어 이내 초록 무성한 화초와 나무들을 마주하게 되니 꽃 보낸 아쉬움보다 초록을 맞이하는 기쁨 또한 작지는 않다. 


그럼에도 봄이 내내 짧게 느껴지는 건 꽃 피어 환한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우리에게는 쉼 없이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 많은 일들이 먹고사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몸이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 마음에게 소홀했던 느낌이 더 큰 아쉬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쉬지 않고 뭔가를 한 결과 마음이든 정신이든 어느 한 쪽이 소홀함을 느낄 정도가 되지는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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