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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y 13. 2022

인생엔 뭔가 있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집안일 끝내고 늦은 점심 식사를 마쳤다. 만보 걷기를 허투루 할 수는 없다. 가벼운 무장을 하고 볕이 약간 기운 오후 4시가 넘어 둘레길로 들어섰다. 올망졸망하던 쪽동백나무 꽃봉오리들이 며칠 새 활짝 피었는가 싶었는데 벌써 지기 시작했다.


길고 둥그렇게 배치된 둘레길 벤치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그 옆에는 지난해 내게 저 산 아래까지 동행해서 걸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던 이가 함께 앉아 있다. 그녀에게 길에서의 약속은 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던 내가 스쳐 지나간다. 반가운 얼굴에게도 함께 걷자던 그녀에게도 손만 흔들어 보이고 빠른 걸음을 걸었다. 그녀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한 후 약간의 미안함이 없지 않았지만 새삼스레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둘레길 끝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길, 반가운 얼굴이 벤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앉기를 권한다. 함께 앉아 있던 이웃도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만 보 겯기를 실천한 지 10개월째다. 피치 못할 긴한 일이 있는 날과 올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알바로 피곤했던 날을 제외하고는 거르지 않고 만 보를 걸으면서도 이 기다란 둥근 벤치에 앉아볼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나보다 연세 드신 분들이 쉬는 자리요, 나보다 수다 떨기 좋아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세상살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었다. 


앉기를 망설이는 내게 두 사람이 거듭 앉기를 권한다. 앉는다는 일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앉는다는 일에는 서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일이 따른다. 가지 않은 길처럼 선택은 선택을 낳는다. 그중에 함께 앉아 있다 보면 이야기 나누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남의 좋지 않은 이야기만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더 사양하면 안 될 것 같아 결국은 엉덩이를 벤치에 걸쳤다.






"여기 내 자리도 있네. 나 여기 처음 앉아 봐."

그러자 반가운 얼굴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왜요? 앉아서 쉬기도 하고 그러시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이웃 그녀가 거들었다.

"저도 오늘 처음 앉아봐요."


얼굴 못 보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본인이 아팠던 이야기, 시집 장가간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오늘 점심에 뭐 먹었는지와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걷기라도 열심히 해서 아프지 말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말 섞다 보면 누구하고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시껄렁하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 시시껄렁해 보였던 이야기 외엔 특별히 마음 섞을 이야기가 없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살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는 법이 없다. 서로들 자신의 배 부위를 쓰다듬으며 뱃살은 어떻게 해도 빠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 들러붙은 살이 무슨 죄냐고 웃음 섞기도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삐질 수 없는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반가운 얼굴은 지난 12월 정년퇴직을 했으니 내게는 새파란 젊은이이고 함께 걷자던 그녀는 밝히고 싶지 않은 내 나이와 같은 나이다.


반가운 얼굴 그녀의 남편은 몇 해 전부터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다닌다. 다리 어느 부위의 동맥이 끊어져 수술을 해도 완전하게 이어지지 않아 지금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란다. 그녀의 딸과 내 큰딸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여러 번 있어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더 각별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래도 애들은 이제 아빠 걱정 안 해요."

"그게 다 자기 덕이야. 엄마가 같이 살아있지 않으면 아이들 걱정이 산더미 아니겠어?."


"맞아요, 애들한테 짐 되지 않으려면 오래도록 부부가 같이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해요. 언니도 나도."





"좀 걸읍시다. 처음 앉아본 벤치에 엉덩이가 딱 붙어버리면 안 돼요."

세 사람이 모두 웃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혹시라도 스쳐 지나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렬로 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와 동갑내기가 맨 앞에 서고 다음으로 내가 맨 뒤로 반가운 얼굴이 서서 걸었다. 마치 봄나들이 나온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조로증에 걸린 병아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말이다. 


"벤치에도 처음 앉아봤지만 이렇게 떠들면서 둘레길 걷기도 처음이네."

세 사람 모두 평소엔 입 꼭 다물고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나도 나도가 튀어나와 섞인다. 

"몇 사람씩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내가 이러고 있으니 아이러니야."

"이런 날도 있는 거죠."


태릉입구역에서 열린다는 장미 축제 이야기가 나왔다. 반가운 얼굴이 야간에도 장미를 볼 수 있어 좋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동갑내기가 거들었다.

"한 번 같이 갑시다. 구경 후에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

내가 알코올 분해 효소 제로 인간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인생 뭐 있어? 좋은 것 보고 막걸리도 한 잔하고 즐겁게 지내는 거지."


아, 왠지 이 동갑내기와는 동갑내기인 줄 알지 못했던 지난해부터 친하게 지내지 않길 잘했다. 그녀의 말은 한마디로 정답이다. 먹고 마시고 즐긴다는 그녀의 말이야말로 어떤 해답지에나 나올 법한 인생에 관한 명언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 뭐 있어?'라는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내 놓은 그녀의 그 답에 전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공감해 줄 수만은 없다. 지금도 인생이 뭔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이 뭔지 그 기미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어린 날에도 나는 이 말의 의미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느꼈던 듯하다. 그리고 아직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어 본 적이 없다. 






'인생 뭐 있어?'라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이런 생각을 접하면 어찌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인생 뭐 있어?'란 말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말에도 쉽게 동의해 주는 사람일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이 한 말에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수긍해 주리라 믿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나와는 달리 인생을 쉽고 편하게 경제적 여유도 누리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이외에 또 다른 어떤 것이 있는지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면서 나는 여전히 인생 뭐 있어?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쪽동백 꽃이 하염없이 진다. 인생엔 뭔가 있다는 내 생각에 하얀 축복이라도 내리듯 꽃을 뿌리면서 말이다. 인생엔 뭔가 있다. 그것이 끝 모를 허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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