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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y 05. 2022

꽃보다 기운 나게 하는 말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오늘은 길님과 저에게 좋은 일 두어 가지 생기길 바라며...'



많은 댓글을 읽으며 기운이 솟음을 느낀다. 오늘 아침엔 특별히 이 댓글에서 왠지 좋은 일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생길 것 같은 예감이다. 


사실 나는 내 삶이 참 미적지근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자주 무료함을 느끼고 멍할 때가 많다. 아마도 그래서 마음 줄 적당한 안식처로 자연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저 풀은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자신이 견뎌야 할 어떤 순간의 어떤 고통도 한 마디 말없이 견뎠을 것이라는 느낌과 함께 기운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풀이나 꽃과의 소통이라기보다는 순전히 내가 살아내야 할 스스로의 시간을 씻는 물 주기다. 물론 화초 또한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그의 언어를 모르기에 알 수는 없다. 화초와 나 사이의 간극이라기엔 얼굴을 마주 대고 있으면서도 등을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 정도다.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저 댓글이 주는 무한한 좋은 기운 덕분이다. 내 댓글은 읽는 사람에게 오늘 내가 받은 이와 비슷한 충만한 느낌을 주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토마토 두 줄기가 정글을 이룰 정도로 우거지는 중이다. 토마토는 아이와 함께 관찰하면서 키우기엔 좋은 식물이지만 집안에서 키운다면 한 포기면 적당하겠다. 흙에 묻어둔 곁순까지 뿌리를 내리고 보니 다른 화초들을 보려면 토마토 줄기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느라 정신이 없다. 줄기 아래쪽 잎사귀들을 다듬어 주었음에도 정돈돼 보이지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모두 텃밭으로 내 보내야겠다.



7~8년 키운 석화(사막의 장미)가 잎을 내지 않고 시름거렸다. 뽑아보니 뿌리가 물컹하다. 이렇게 되도록 잎이 왜 안 나올까, 이번 겨울 지나면 나오겠지 기다리고만 있었다니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물 빠짐은 괜찮은 흙인데 옥상옥 식으로 다른 작은 화분들을 석화 화분 위에 올려두었던 것이 화근이었을 수 있다. 꽃 한 번 보지 못하고 제법 어른 티가 나는 한 목숨을 또 버리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성해 보이는 위쪽 가지를 자르고 아래쪽도 잘라 물기를 말려본다. 위쪽 잔 가지들은 자른 자리가 아무는 듯한데 줄기 아래쪽은 껍질과 몸통이 서로 분리된 채 들떴다. 보내준 사람에게 꽃 못 보여준 건 그렇다 쳐도 죽었다고 말하기엔 입이 열 개라도 면목 없을 일이다. 잔 가지들이라도 잘 아물어 살아나 다시 새 뿌리를 내 주기 바란다. 함부로 꽃을 바라면 안 될 일이다.



파필라리스는 이 와중에도 꽃 색이 짙어지며 다른 꽃봉오리를 차례로 열었다. 꽃이 피었으니 먹을거리를 좀 더 주어야겠다. 관리가 좀 더 필요한 고상한 화초들은 애당초 나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물 한 번 주면 죽아기디가도 살아나는 파필라리스 같은 생명력도 강하고 가격도 착한 아이들이 내게는 더 어울리는 모양이다.



몇 해를 같은 화분에서 키워도 해마다 때가 되면 새순을 내주는 석류 또한 그런 아이들 중 하나다. 올해는 꽃도 보고 열매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씨앗 묻은 지 10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화초를 가꾸며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때가 많다. 사람에게서 실망했을 때에도 꽃들은 나를 받아주는 가없는 수용체다. 그 화초들 사이에 내 마음을 심어 상처 없이 가꾸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화초는 화초들끼리 더 잘 통할 것임을 안다. 나 또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나 다운 나를 더 잘 인식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우리들의 입에서 피어난 꽃 말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이 주는 기운은 꽃에게서 느끼는 향기를 더욱 큰 희열로 상승시킨다. 


이웃님의 댓글을 표절해 보았다. 이 이웃님은 내 회색 기분도 핀셋처럼 잘 집어내시는 능력자다. 조심해야겠다. 오늘은 물론 앞으로도 내게 생기는 좋은 일은 모두 이웃님들 덕분이다. 그중에도 말이 가진 그칠 줄 오므는 향기 덕분이다.


'오늘도 이웃님들과 저에게 좋은 일 두어 가지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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