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젓가락 중 세 개를 집었을 때

by 장미

무늬의 색만 다른 젓가락 두 매를 한 그릇에 넣은 후

보지 않고 그중 세 개를 집었을 때 같은 쌍이 나올 확률은?





확률 공부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의 젓가락 두 개만 딱 잡아들기를 바라며 젓가락을 집었다.

바람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손에는 세 개의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네 개를 집어 들었을 때는 순간적인 기대를 하지 않는다.

순한 강아지처럼 다른 두 개를 덜어내 제자리에 넣으면 될 일이다.


두 개를 집어 들었을 때 역시

같은 젓가락만 잡히는 경우는 확률에 따를 뿐이다.

이 경우에도 남은 두 개를 모두 집어 들어 짝을 맞추기보다 한 개씩 집어 들며

짝이 맞을지 맞지 않을지 예상을 해 본다.

시간 죽이기 같기도 하고

아침부터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가는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젓가락 무늬는 푸른색, 내 젓가락 무늬는 분홍색이다.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어려서부터 이런 때면 절로 외던 주문이 때로는 소용돌이를 치기도 하며 마음속을 흐른다.

네 개의 젓가락 중 세 개의 젓가락을 집었을 때 두 개가 서로 같을 확률은?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아 이런. 오늘 아침에도 실패다.

분홍 무늬 젓가락 두 개에 푸른 무늬 젓가락이 하나다.

남은 젓가락 하나를 꺼내 남편 젓가락 짝을 먼저 맞추고 분홍 무늬 젓가락은 제자리에 넣는다.

분홍 무늬 젓가락을 먼저 넣었다가는 다시 분홍 무늬를 집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은 경험 없이도 바로 얻었으니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주욱 나열하지 않았다고 붉은 작대기를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있는 힘껏 사정없이 주욱 그어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아침이면 자주 내는 수란을 남편은 젓가락으로 후루룩 마시듯 입안으로 당겨 넣는다.

반면 나는 숟가락으로 수란을 모시며 대접하듯 조심스럽게 모셔와 먹는다.

내가 아침에 내는 수란은 대체로 노른자를 덜 익혀 흰자에 덮인 노른자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남편은 젓가락으로 수란을 끌어당기다가 노른자를 자주 터뜨린다.

그러면 식탁에도 옷에도 노른자가 방울방울 떨어지거나 때로는 주르륵 흘려내리기도 한다.

숟가락을 함께 놓아도 지금까지 한 번도 숟가락으로 수란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대체 왜?

저 쇠심줄 같은 고집은 도대체 왜왜왜?


언제부턴가 오늘도 노른자 방울을 흘리겠지 하며 젓가락만 놓게 되었다.

오늘처럼 젓가락 세 개가 들린 날 아침엔

'노른자, 너 터져 흐르고 싶으면 흘러' 할 정도로 나도 무덤덤해질 때가 되었나 보다.

남편이 흘린 계란 노른자를 내게 닦아달라고 징징거릴 나이는 지나서 내게 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이럴 것을 예상하고 젓가락을 꺼내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특히 젓가락 세 개가 손에 잡혔을 때 이 조심스러운 게임을 혼자 즐기는 아내를

남편이 알 리 만무라 생각하니 세상이 다 알아도 남편만 모를 수 있는 이 비밀이 왠지 즐겁다.

남편이 노른자를 줄줄 흘려도 괜찮다. 아내는 젓가락을 준비하는 동안

그 정도 스트레스야 에베레스트를 단숨에 넘은 듯 밟고 넘어섰다는 사실을

오래오래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네. 마눌이 왜 잔소리를 그친 것일까?'

잔소리가 끊긴 아내에 대해 남편의 궁금증이 극에 달해

혹시 물어온다면 그때쯤이나 생각해 볼까?





매 : 젓가락 한 쌍을 세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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