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배터리에 충전기를 꽂아놓고, 배터리가 찰 때마다 숫자가 변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사람의 인내심을 은근히 자극하는 고역이다. LED 창의 숫자는 더디게 깜박이고, 그 깜박임보다도 더디게 변한다. 차라리 어느 구석에 내버려 둔 채 잊어버리는 편이, 그래서 불현듯 생각나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꽉 채워져 빛나고 있는 1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인생에서의 배움은 이렇듯 보조배터리에 점등되는 숫자를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악기도, 언어도, 나도 모르는 새 실력이 쌓여 어느덧 100에 도달한 그 순간만을 즐기고 만끽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1에서 시작해 매 순간 땀을 흘리며, 숫자가 하나씩 변해가는 과정을 집요하리만치 차근히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은 결국 배움 그 자체이기보다 “숫자를 응시하는 일”이다. 특히 주변에서 재능을 타고나 나보다 몇 배의 속도로 숫자가 휙휙 바뀌는 영재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좌절과 포기의 순간은 더욱 빨리 찾아오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약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인류에 소개했던 심리학자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인생의 배터리에 10000이라는 숫자가 뜨기까지 무수한 숫자가 바뀌는 그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노하우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 심리학자는 만병통치약같이 효과적인 노하우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차피 그 노하우라는 것은, 결국 자연의 섭리이자 물리법칙이라 할 수 있는 ‘존버’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요즘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는 일본어 공부에 삼가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