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넘쳐난다는 대한민국 땅에서, 하필 나는 그중에서도 제일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 박사다.
대한민국에서 인문학 박사로 산다는 건,
훗날 교수가 되는 0.001%의 사람만 간신히 넘을 수 있다는 자.기.만.족.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소명의식이라도 없으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좁은 감옥에 스스로를 감금하는 미친 짓일 것이다.
항상 부족하기만 한 돈과 시간과 젊음을 박박 긁어모아 미지의 어둠 속으로 매일매일 던져 버리며
'이게 정말 소비가 될까?' 싶은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하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왜 하필이면
지금으로부터 한 80여 년 전쯤 비슷한 고민을 했던 그 사람이 딱 이 시점에 떠오르는 걸까.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문학의 '쓸모'를 묻던 한 청년.
의식 있는 청년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이 무장독립투쟁뿐이던 시절,
이미 망한 나라의 언어로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문학을 하는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만 생각하다
정작 자기 이름으로 된 변변한 시집 한편 내보지 못하고 차디찬 남의 나라 감옥에서 요절했던 그 사람.
지금은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숭앙하지만,
정작 자신이 살았던 시공간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도, 한 사람의 문학도로서도
해방된 조국에서 유명한 시인이 되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보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지배당하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나는
돈을 많이 벌수록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 속에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인문학을 박사까지 공부하며
나이 사십이 되도록 여전히 미완未完인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럽다.
어느 비 오는 밤, 80년 전의 그가
작은 등불이 켜진 어두운 육첩방에서 눈물과 위안으로 나에게 악수를 건넨다.
나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는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홀로 沈澱하는 것일가?
-윤동주, 쉽게 씨워진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