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지성인

by YUJU
인간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동물처럼 살다 죽는 길과, 지성인으로 살다 죽는 길.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익숙하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강한 힘을 가진 개체가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고, 독립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약한 개체는 부모에게조차도 냉정히 버림받는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힘을 상징하는 권력과 돈의 의미가 크면 클수록 '아, 이 사람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구나'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도, 대치동 영유아들의 '의대준비준비준비'반도 결국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다 같은 힘의 논리이다. 살인적인 경쟁구도가 만드는 파워게임에서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본능적 몸부림.




'지성인'으로서의 삶은 인간의 동물성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학부시절 내가 존경하는 사상사 교수님께서 유교의 '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신 적이 있었다. '인'은 不忍之心,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살리려 내 생명의 안위는 둘째치고 손발이 먼저 나가는 마음이다. 어떠한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 없이, 인간으로서 위급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생명체에게 느끼는 그저 반사적이고 무조건적인 마음인 것이다.



놀랍게도 오직 인간들만이, 잔인한 자연의 논리에 의해 버려지는 약한 개체들을 위하고 보듬는다. 특히 인간들 중에서도 배운 사람들일수록 장애인, 소수자, 고령자, 저소득자,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울타리의 필요성을 더욱 민감하게 느끼게 되고, 그 사회적 안전망을 지탱하는 일에 앞장서서 헌신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오랜 학문과 배움을 통해서, 지성인은 당장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 급급해 각자도생으로 동물적 본능에만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너머'를 본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돌아와, 사람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가르치고 이해시키고 깨닫게 한다. 인류는 초월자들에 의해 언제나 이런 식으로 발전해 왔다.




어떤 사람이 인간 사회의 약한 개체를 보듬는데 관심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을 보면서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전혀 품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지성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또한, 안타깝지만 맹자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으로 불릴 자격도 없다. 모든 인간에게는 두 갈래의 길, 즉 동물의 길과 지성인의 길 밖에 없다고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최근 전지구적 관점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종 중 지구를 가장 심각하게 망치는 바이러스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 인류가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의 당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는 인간다운 인간,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만드는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빽도 아니다. 누군가의 배움이 단지 이런 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의 헛된 배움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도 그 자신을 지성인으로 만들지 못한다. 지성인이 오랜 공부를 통해 인간의 동물성을 초월함으로 얻게 되는 것은 단 하나, '측은지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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