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에 봤던 JLPT N2 시험에 합격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인생 버킷리스트에 'N1 합격' 한 줄을 더 추가하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합격기를 기록해 둔다.
1. 베이스
나는 흔히 말하는 히라가나도 모르는 '노베'도 아니고 애니에 쩔은 '씹베'도 아닌, 어중간한 베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바람의 검심' 만화와 '각트(Gackt)'라는 락가수를 좋아해서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예능을 접하며 일본어를 독학했었다. 순전히 일본 문화에 대한 재미와 관심으로 구몬 일어를 시작하게 되면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도 일본어로 정하게 되었다. 그땐 내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제2외국어 수준이라는 것이 고작 사설학원 기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건 훗날 N2공부를 위해 일본어를 제대로 꾸준히 배우며 알게되었다. 대학 입학 이후로는 점점 잊혀가는 일본어를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에 교양과목으로 일본어를 배워보기도 하고, 책을 사서 독학도 해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침 우리 대학으로 유학 온 일본인 네이티브 언니와 친하게 지내게 되어 과외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학과 공부에 치이다 보니 채 두 달을 가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이를 낳고 나서 잠깐 육아 휴학을 하던 중,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대를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성인 구몬 일어와 구몬 한자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동기부여가 안돼서 초반 몇 달 풀고는 나머지 교재는 받아서 그저 쌓아두기만 했다. 근데 이게 막판에 도움이 될 줄이야!
그나마 내가 가진 베이스 중에 제일 쓸만한 베이스는 공인 한자 2급이었던 것 같다. 학부 전공이 사학이라 평소에 한자 볼 일이 많아 한자 2급을 따놓았었는데, 그것이 대학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일본어 공부에 엄청나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2. 워밍업
박사과정에 입학하며 졸업 요건에 JLPT N2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학과에서 전공 교수님이 내주시는 한문 해석 시험이 JLPT를 대체할 수는 있었지만, 그동안 인생의 숙원사업 같았던 일본어 공부를 이 기회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보려 하니 N2의 벽은 너무나 거대했다. 그 날, 인류는 떠올렸다. 일본어는 손 놓은 지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되어 실력이 다시 왕기초로 내려가 있었기에, 박사 1학기를 마친 후 학교 앞 시사일본어학원에 등록하기로 마음먹고 히라가나부터 시작하는 기초반부터 수강을 해야만 했다. い형용사, な형용사의 활용과 동사 변형 등을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차근히 배워나갔다. 기초반까지는 2달간 학원에 다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육아와 수업과 조교업무를 병행하는 입장에서 학원을 오프라인으로 계속 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방학마다 2달씩 온라인 강의를 활용해 중급 레벨까지 야금야금 실력을 쌓고 나니 어느덧 1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드디어 N3 문제가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고 이해되는 수준까지 오고 나서, 논문학기가 시작되자마자 N3 시험을 건너뛰고 본래 목표인 N2 공부에 돌입하게 되었다.
3. 시험공부
N2 공부는 2025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강은 이번에도 시사일본어를 선택해서 들었다. 공부 초반에는 N3를 패스하면서 생긴 구멍들이 나중에 씽크홀처럼 커져서 후회할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에 N3 책도 사서 독학으로 공부하며 인강과 병행해보고자 했으나, N2를 공부하려면 어차피 N3 내용을 전부 거쳐야 하기에 공부하면 할수록 N3 공부는 점점 필요 없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매일매일 하루에 4시간 이상 인강을 듣고, 나머지 시간은 단어를 외우고 애니나 일드를 보며 청해를 공부하는 지난한 노력의 시간이 이어졌다. 단어는 여러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추천했던 회독앱을 이용했다. 회독앱은 권장하는 것처럼 3회독까지는 못하고 시험 직전 N2 단계까지 1회독을 마쳤다.
이때부터는 일전에 독학한답시고 꾸역꾸역 사모으기만 했었던 일본어 한자책, 문법책 등을 전부 꺼내서 닥치는 대로 공부에 동원했는데, 특히 독해 공부는 10년간 묵혀놓고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구몬 일어가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인강으로 일본어를 중급까지 공부하는 동안 구몬 일어의 문법 파트를 병행했었고, N2를 준비할 즈음이 되자 J단계부터 마지막 L단계까지 일본문학 작품 독해 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독해 연습은 아무래도 '양치기'가 유리하다고 느껴 하루에 30장씩 구몬 일어를 끝까지 풀고 나니 확실히 독해에 속도가 붙은 것이 느껴졌다. 인강을 다 듣고 난 후, 시험 직전까지 일주일 동안은 해커스 JLPT 모의고사를 매일 1회씩 풀었다. 오전에 2시간 30분씩 걸리는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오후에 체력이 쭉쭉 빠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푼 모의고사 5회가 척도득점방식에 의거해서 전부 최저점 110점이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드디어 본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나마 자신 있던 독해가 불시험이었....
4. 후기
기초반 학원 등록부터 N2 시험까지, 모아보니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일본어에 바쳤다. 노베로 시작해 2달만에 N2급을 땄다고 자랑하는 언어천재 유튜버들에 비한다면 내 수준과 실력은 거북이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결국 결승점에 다다랐다. 시험은 7월 초에 보는데, 결과는 2달 뒤인 8월 말에나 알려주는 악명 높은 JLPT 시험인지라, 시험 보자마자 며칠 간은 JLPT 마이너 갤러리에 들어가서 희망회로와 좌절회로를 하루에 수십 번씩 돌리기도 했었다. 모의고사에서는 가장 자신있던 독해가 정작 본시험에서 빠그러지는 바람에, 시험의 당락이 결정되는 기준인 90점에 못미치거나 간당간당한 점수가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들어가 본 JLPT 공식 홈페이지에서 합격이라는 두 글자와, 고득점은 아니지만 내가 가채점했던 것보다 무려 10점 이상 높은 점수로 안정권 합격이라는 반가운 결과를 보게 되었다. 만약 결과가 합격이라면 '와우, 이게 되네..?!'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 것 같았고, 모니터에 뜬 합격 글자를 보고나선 정말 말 그대로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이 40에 졸업 요건에 몰려 자의 반 타의 반 도전한 일본어 시험이, 이게 진짜 되네! 중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어 25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간직했던 내 안의 어떤 지향이 결국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고 신기하기만 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 나 자신아. や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