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취향과 특이 취향

by YUJU

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머리 묶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묶여서 보내 놓으면 항상 등원한 지 1시간도 못되어 머리끈이며 핀을 작은 아기 손으로 빼느라고 머리카락을 온통 산발을 만들어 놓곤 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다시 묶는 것이 일과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생애 2번, 본인의 동의를 받아 머리를 묶을 필요가 없는 숏컷으로 잘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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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커트를 했던 유치원 때는 원장 선생님이 내 아이를 남자아이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원장 면담 시간이 되어서야 뒤늦게 알게 된 해프닝이 있었다. 두 번째 커트는 비교적 최근이었는데, 대학교 홍보차 아이의 학교를 방문한 이화여대 홍보 도우미 학생이 나중에 자라서 이대를 가고 싶다고 말하는 내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남자 친구는 우리 학교에 입학이 안 돼요"라고 말해서 반 친구들이 빵 터진 일화도 있었다. 나중에 이대를 졸업한 지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는데, 웃으라고 한 이야기에 한동안 모두가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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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2차 성징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이이기에, 아이를 일시적으로 접했을 때 '짧은 머리=남자아이'로 오해를 하게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어른들의 시선에서 '짧은 커트 머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취향'이라는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세계적인 시대사조를 무시할 수 없어서인지, DNA에 '전체주의'가 각인되어 있을 것만 같은 우리 한국 사회도 최근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말로는 '개취'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그 개인의 취향에 '특이'와 '보편'이라는, 닳고 닳아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이분법을 또다시 들이댄다. 모든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다면, 특이 취향이라는 것도 보편적 취향이라는 것도 일절 존재 하지 않아야 함이 당연할 텐데. 이 논리적 모순이 왜 이리도 당당하게 개념화되어있는 것인지 그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것은, 취향에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라는 것이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철저히 물리적이라는 점이었다. 아이와 함께 피규어를 사러 가면 머리가 하얀 7-80대 일본인 할아버지들이 돋보기를 쓴 채 진지하게 캐릭터 굿즈를 고르거나 만화책을 읽고 계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해리포터가 엄청난 인기를 끌던 무렵, 지하철에서 해리포터를 읽고 싶었던 어른들이 표지의 그림을 들키지 않으려 책에 커버를 씌우고 다녔던 일화와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드러냄에 있어 자신감보다는 창피함을 느껴야 하는 사회, 개인에게 사회적 표준에 대한 그만큼의 압력이 주어지는 사회라면 그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지금도 만약 우리나라의 지하철에서 원피스 만화책을 읽고 계신 80대 노인분을 마주했을 때 "와, 저 어르신 취향 참 독특하시다"라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갈길이 아직도 요원한 것일 테다.

내 아이는 명탐정 코난 만화에서 악당이자 비인기 캐릭터인 진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뽀로로에서는 포비를 제일 좋아했었고, 스펀지밥에서는 뚱이를, 미키의 친구들 중에서는 구피를, 곰돌이 푸에서는 티거를 제일 좋아했었다. 만약 아이가 자신의 취향이 특이한 거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원래 개인의 취향이라는 건 각자 고유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니, 그것을 굳이 '보편'과 '특이'로 나누는 이분법적 의미 부여는 필요 없다고. 그래서 너는 너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에 훨씬 더 과감해도 된다고.


작년에 갔다가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각설이처럼, 죽여도 죽여도 또다시 살아나는 좀비처럼, 이제는 좀 사라질 법도 한데 기어이 부활을 반복하는 '이분법'은 이렇게 아이들의 세계에까지 스멀스멀 파고들어, 다양성에 대한 건전한 감각이 길러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개인 취향'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모두를 '특이 취향'으로 부르도록 하는 건 어떨까. 사람은 사실 모두가 어딘가 특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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