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인간관계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찰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3가지 정도의 분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심리를 깊게 파고들다 보면 더 많은 유형이 있겠지만, 사회에서 표면적으로 두드러지는 갈등들은 대체적으로 이 부류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것 같다.
첫째는, 주변 대다수에 해당하는 사회적 인간들이다.
사회적인 인간들은 사회 속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반대로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한다. 그렇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잘 살피는 기술이 일찍이 발달하게 된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적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주변의 모든 인간들과 항상 안전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인간들은 갈등의 주요 유발요소가 되는 '자기주장'을 날카롭게 펼치지 않는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후술할 정치적 인간을 대개 존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삼고, 정치적 인간이 가진 권력의 비호를 받는 것을 안정감 있게 느낀다. 한편, 이들이 한심하게 여기고 싫어하는 부류는 마지막에 후술할 철학적 인간이다. 이들은 철학적 인간들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제기를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저해하는 대책 없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종종 보이는 정치적 인간들이다.
정치적 인간들은 본인의 영향력 확장이 인간관계의 최대 목표이며, 따라서 초반부터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세력 규합에 매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간혹 세력 규합을 유치한 짓으로 치부하는 정치적 인간의 부류가 있으니, 이들은 이미 그 공동체의 '보스'이거나 보스와 정치적 야합을 맺어 세력 규합이라는 헛고생을 할 필요 없이 그 판에서 우위를 점한 케이스이다. 이들은 마치 여왕벌처럼, 꿀벌과도 같은 사회적 인간들이 성실히 구축해 놓은 벌집에 군림해서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인간들을 직간접적으로 진두지휘 하며 벌집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즐긴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놀랍게도 사회적 인간이 혐오하는 철학적 인간들이다. 철학적 인간들이 간혹 본인의 철학에 어긋나는 벌집의 구조적 모순을 발견하게 된 순간, 그야말로 '눈까리'가 돌아서 정치적 인간의 권위를 개무시하고 그 권위가 형성되는 근원인 벌집을 깨부수어 버리는 또라이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장 소수에 해당하는 철학적 인간들이다.
철학적 인간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친밀도도, 평화도 아닌, '당위'이다. 철학적 인간의 입장에서 사회적 인간은 비겁하고, 정치적 인간은 야비하다. 철학적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나 공동체 안에서 해결해야 할 모순을 발견하고, 비판을 제기하며 갈등을 유발한다. 철학적 인간들이 던지는 문제제기라는 짱돌은 사회적 인간들이 애써 쉬쉬하며 덮어 두고자 했던 사회라는 연못의 잔잔한 수면 위에 기어이 파장을 일으키고, 바닥에 얌전히 가라앉혀둔 흙을 기어이 휘젓는다. 사회적 인간들은 철학적 인간이 만든 아사리판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게 되고, 마침내는 철학적 인간을 혐오하게 된다. 한편, 정치적 인간은 정치적 인간 대로, 자신의 권위가 1도 먹혀들지 않는 철학적 인간들의 깽판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정치적 인간은 자신의 권위에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회적 인간들을 조종해 철학적 인간을 압살해버리거나, 입을 막아도 계속 외치고 부르짖으면 마침내 공동체에서 내쫓는 처벌을 내린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모두가 알다시피, 철학적 인간의 말로는 결코 좋지 않다. 그러나 나 또한 철학적 인간의 입장에서 우리 부류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철학이 없는 연못의 물은 결국 고여서 썩고, 벌집은 결국 벌들에게 버림받아 바싹 마른채로 나무에서 떨어진다.
'철학에는 영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음악 영재, 미술 영재, 수학 영재, 과학 영재, 언어 영재, 스포츠 영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쩌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난해하고 수준 높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철학 영재를 만들 수 없다. 이것은 철학이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갈고닦는다 할지라도, 다른 영역처럼 단기간 내 익히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인간 지성의 최고 수준을 요하는 심오한 지식이라는 방증이다.
생각해보면 철학은, 아침에 눈을 떴다가 자기 전 다시 감을 때까지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긴긴 세월을 허무와 고독 속에서 버텨낸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의 ‘가시면류관’에 가깝다. 그럼에도 단언컨대,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갈고 닦아 날카롭고 예리하게 벼려진 나의 철학적 사유를 잃느니, 차라리 내 삶의 행복과 평안을 잃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