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대 있는 집안

by YUJU

'쪼'는 우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이다. 나의 증조부는 왜정 시대에 평북 용천에 사는 지주였다. 증조부댁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나 연변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작은할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한밤중 독립운동가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증조할아버지의 집을 찾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증조부는 아무 말씀 없이 태극기에 곱게 싼 채로 꼭꼭 숨겨두었던 두꺼운 현찰 다발을 그들에게 전달했고, 독립운동가들은 증조부께 말없이 목례를 한 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이동 루트로서 일본의 감시와 압박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던 지역이기에, 증조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자금을 제공하는 이 일에 당신과 당신 가족의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직전, 공산당에 의한 강제 노동에 차출되었다. 어느 날, 시찰을 온 공산당 당간부가 동네 청년들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얀 식탁보를 깔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하고 역겨워 보였던 할아버지는 당간부가 앉은 식탁으로 달려가 식탁을 그대로 뒤집어엎어버렸다. 그 일로 보안서에 연행된 할아버지는, 1945년 11월 신의주 학생 운동 때 보안서가 습격당하고 소란한 틈을 타 탈출하여 그대로 월남을 했다.


아빠는 80년대 야만의 시절에 군생활을 했다. 당시 주일성수를 목숨과도 같이 여기던 아빠는 선임에게 교회를 보내달라고 했고, 선임은 감히 신병 주제에 교회를 가고 싶다고 요청한 아빠를 인적 없는 창고로 데려가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각목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아빠는 맞다가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 허리를 잘못 맞는 바람에 척추의 연골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찢어져 버렸고, 그 때문에 아빠는 아직도 1년에 한 번씩 서서 설교를 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허리 디스크 통증이 재발하고는 한다. 결국 자신의 폭행이 폭로될까 두려웠던 선임은 아빠의 교회 출입을 예외적으로 허락했고, 아빠는 그 부대의 창설이래 처음으로 교회를 출석한 신병이 되었다.


이런 대단한 가풍을 물려받은 나도 선친들의 뜻과 위업을 받들어 아주 열심히 내 쪼대로 살아가고 있다. 쪼대로 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지금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죽어도 아니고, 바른 말은 곧죽어도 해야겠는 그놈의 '쪼' 때문에 할아버지가 옥에 갇히고 아빠가 매를 맞았듯 나 또한 수없는 피해를 봤고, 인간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고, 때로는 저평가당했고, 수많은 오해를 샀고, 심지어 금전적인 손해도 봤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고서라도 내 쪼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라는 존재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남의 눈치만 보며 남에게 휘둘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면,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의미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쪼대로 사는 사람은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고집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쪼대로 살다가 궁지에 몰리거나 쪼대로 사느라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때는 멍청해 보인다. 나도 안다. 심지어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쪼대로 살았던 사람이 '역사'가 되면 갑자기 그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진다. 후대의 사람들은, 자기의 쪼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식민 체제에 만렙으로 적응했기에 부귀영화와 천수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친일파를 거세게 비난하고, 언제 올지도 모를 독립을 이루겠다고 자기 쪼대로 살면서 가족도 버리고 자기의 목숨도 버리고 현생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바보 같은 행동만을 일삼았던 독립운동가들을 뜨겁게 칭송한다.


내가 아는 한 초대 기독교인들도 '쪼'에 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었다. 만신전인 판테온이 시내 최중심부에 위용을 뽐내며 세워져 있던 로마사회에서, 일신교를 주장하며 쪼대로 살아갔던 기독교인들은 신앙이 대체 뭐라고 거기에 자기 목숨까지 거는 고집스러운 멍청이들일뿐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사자밥이 될지언정 신앙은 버릴 수 없다는 광기(狂氣), 그 무시무시한 쪼는 결국 로마 전역을 흡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해의 시기를 지나 정치권력 및 자본주의와 적절히 야합함으로써 특유의 '쪼'를 상실해 버린 기독교는, 쪼를 잃은 그 즉시로 변질되고 썩기 시작했다.


기독교적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와 체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권력자가 아닌 소수자의 편을 든다는 이유로, 부조리한 대세와 규율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겉과 속에 오차가 없는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앞으로도 많은 약점들을 노출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고스란히 나에게 위기와 시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쪼'대 있는 집안의 자손답게 난 우리 혈통에 고이 내려오는 '쪼'의 족보 한 구석을 내 이름으로 채워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쪼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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