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면서 떠올려보는 나의 엄마. 나의 원더우먼.
혼자 있는 것도 좋지만 휴직 후 일상의 '꿀'은 부모님 댁에 있다.
그 꿀밭에서 뒹굴뒹굴 한참 자다가 일어났는데, 엄마가 물어본다.
"순이야, 지금 금값 얼마냐?"
"지금? 한돈에 40만원 되려고 하지."
"그러면 그... (웅얼웅얼)"
"응? 엄마, 뭐라구?"
"그 금반지.. 넌 잘 갖고 있냐?"
"ㅋㅋㅋ 엄마, 팔을라고?"
눈치를 보느라 작게 말해서 입안에서 맴도는 엄마의 말을 귀신같이 알아듣는 큰딸이다.
한 5~6년은 되었을 텐데, 종로 귀금속 거리에 가서 내 반지 구경하다가 엄마 반지까지 샀던 그때가.
엄마 손가락이 더 두꺼워서 배보다 배꼽이 큰데.. 그 손가락이 두꺼워진 이유가 결국 우리 키운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큰맘 먹고 함께 맞췄었다. 그리고 그 사이 금값은 2배가 넘게 훌쩍 뛰어있다.
"엄마, 팔고 싶으면 팔아. 나중에 금값 떨어지면 더 큰걸로 사줄게."
반지를 해준 의미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팔고 싶으면 맘 편하게 팔게 해주는게 더 좋겠다 싶었다.
그 뒤로 팔겠다 말겠다 말은 없었지만, 아마 엄마가 내킬 때 속 시원히 처분하실거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해 1월이었던가, 2월이었던가.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다.
난 그때 그냥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3월 개학이 되기 전 1, 2월의 겨울방학에도 고3이라고 내내 보충수업을 했더랬다.
학교를 그만두는 방법의 시작은 그 보충수업에 '안' 나가는 것이었다.
방황하는 사정이야 몇년 전부터 오래된 것이어서 엄마도 그때는 우선 얘가 해달라는대로 해주자 싶었는지 잠을 잘 수 있는 고시원형 독서실에 들어갈 돈을 내주었다. 사실 당시 내 상태가 말도 안 통하고 막무가내였던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그때 참 우울했다. 혼자 두어서 위험했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 마음속에 쌓였던 화가 폭발했던 것이다. 엄마 마음도 마음이 아니었겠지만 당장은 말릴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보내 줬던 것이었으리라.
학교 보충수업에 안 나간 지 한 일주일 정도 되었을 무렵,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독서실 앞 놀이터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땐 그것이 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해방시키는 방법이었다.
"어쭈, 담배 안 끄냐?"
"...????"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미끄럼틀 아래 와 계셨다. 참 점잖고 올곧은 분이었고 나도 잘 따르던 분이었다.
엄마도 모르던 독서실 위치를, 친구 한두 명 정도만 알던 곳인데..
그리고 2학년은 끝났는데도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그 이른 아침에 찾아오셨던 것이다.
퉁명스럽게 투정을 부리다가 '저는 솔직히 왜 사나도 싶은데 엄마 때문에 살아요.' 했더니 그 뒤의 선생님 말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괜찮아. 엄마는 너보다도 강해. 너나 잘해. 세상의 어머니들은 누구보다도 강해."
큰딸이므로 난 항상 엄마를 지켜주고 싶지만, 가끔 미성숙한 한켠의 내가 불안해할 때 선생님이 해주었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위안삼고는 한다.
그렇지만 선생님 말이 맞다.
다음달부터 수영을 배워야 하는데 세상에, 신규 등록은 밤새 줄을 서서 다음날 아침 5시 45분에 신청을 해야 될까 말까라고 한다.
마음 먹으면 하고야 마는 성격이기에.. 원터치 텐트를 쿠팡에 주문해서 폈다 접었다 연습하고 있는데...
엄마가 같이 줄을 서러 가겠다고 한다. 네...?
'그것이 알고 싶다' 애청자인 우리 엄마는 혹시나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어서 그렇게 결정했을 것이다.
나도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이왕 같이 가는 거 어렸을 때 못 해본 야영한다고 생각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결국 수영장 앞에 텐트를 치고 엄마하고 나란히 누워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가 선잠에 들었다.
밤새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처럼 딸이 걱정되어서 같이 와서 밤을 새시는 어머니들이 계셨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강하다, 정말.
수영장 등록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난 그날 아침부터 다음날까지 앓아누워버렸다.
침대 귀신이 되어 버린 나를 엄마가 문틈으로 연신 들여다보았다.
"순이야, 밥먹고 누워있어."
"순이야, 물먹고 자."
"쟤가 피곤해서 그래, 기초체력이 없어. 원래 항상 피곤한거야."
커오는 과정에서의 흐렸던 날들은 엄마가 있어서 나 또한 견뎠다.
이젠 내가 더 강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날 아직도 지켜주려고 하고 난 여전히 지금도 엄마의 그늘에서 쉬고 싶어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본가에 머무르는 것 같다.
쉬면서 엄마와 평소에 나누는 대화도, 어미새가 아기새 먹이를 물어다주는 듯한 보살핌도 다 놓칠 수 없이 소중해서, 오늘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적는다.
회사로 돌아가서도 시간 내서 엄마하고 더 재밌는 얘기 많이 만들어야지!
P.S. 엄마하고 이번에 맞춘 커플 운동화. 안 산다고 하는 걸 한번 신어만 보라고 신겨놓고 그냥 결제해버렸다. 이런 면에선 앞으로도 쭉 엄마보다 강한 딸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