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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평-평균이란 허상 속에 갇힌 우리들의 이야기

by 임선재

"아파트는 국평으로 마련해야지." "국평 정도는 해야지." "국평보다 조금만 잘하면 괜찮지 않아?"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자기 자신에게 이런 말을 속삭여 본 적도 있을지 모릅니다. 여기서 '국평'이란 '국민 평균'의 줄임말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보통 수준' 혹은 '평균적인 기준'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 '평균'이라는 단어에 위안을 느끼기도 하고, 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평균을 기준 삼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안심하기도 하고, '난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평균이라는 허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상 속에 스며든 '국평'의 그림자

국평은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한 선택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스마트폰을 새로 사려 할 때 "국평 이상의 카메라 성능이면 괜찮지"라고 말하고, 외식을 할 때도 "국평 정도의 맛만 되면 무난하지"라며 선택을 정당화합니다. 옷을 살 때도 "이 정도 브랜드면 국평이지"라고 말하며 평균 수준의 품질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직장인 김씨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자신의 연봉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국평보다는 좀 낫다"고 말하며 안도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과연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평균이라는 개념이 한편으로는 위안을,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는 불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이씨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국평'이라는 말에 압박감을 느낍니다. "요즘은 국평이 토익 800점이래", "국평 스펙은 어학연수에 인턴십까지야"라는 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는 국평에 맞추기 위해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주부 박씨는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 때마다 국평과 비교합니다. "우리 아이가 국평보다 얼마나 위에 있는지" 또는 "얼마나 아래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됩니다. 아이의 행복이나 적성보다 국평이라는 수치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처럼 국평은 마치 '적당함'을 나타내는 편리한 지표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우리를 편향된 생각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국평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리는 '평균'이란 틀 안에서 스스로를 규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평을 기준으로 삼다 보면 "이 정도면 됐다"는 안도감에 도전의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이 정도면 안 되는구나"라며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낙담시키기도 합니다.


'평균'이라는 환상의 함정

국평이란 개념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절대 기준'처럼 작용할 때입니다. 평균은 어디까지나 통계적 지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국평이라는 말에 나의 위치를 과하게 의식합니다.

통계학자 토드 로즈는 그의 저서 '평균의 종말'에서 "평균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 공군에서 조종사 좌석을 '평균적인 체형'에 맞게 디자인했을 때, 실제로 그 좌석이 완벽하게 맞는 조종사는 한 명도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평균적인 사람'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 허상을 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평균'이란 개념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함정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균 연봉'이라는 수치는 상위 1%의 극단적으로 높은 값들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실제 소득보다 훨씬 높게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평 연봉'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 이하'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회학 강의에서 '평균의 역설'에 대해 배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평균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믿는다는 내용이었죠. 모두가 평균보다 잘할 수는 없는데도요.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가 말하는 '평균'이란 건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라는 것을."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개성은 평균적인 집단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말했습니다. 밀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평균에 맞추려 한다면, 사회는 획일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이 중요한 시대에 국평이라는 기준이 너무 강하게 작용한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놓치게 됩니다.


또한, 국평은 '보편적 기준'을 만드는 동시에 특정 기준을 강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한 학생이 시험에서 국평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넌 평균보다 못해"라는 낙인이 찍히고, 취업 준비생이 '국평' 수준의 직장에 가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게 됩니다. 국평은 그 자체로 완벽한 기준이 아닌데도, 종종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 사람들에게 부담과 좌절을 안깁니다.


평균에서 벗어나 빛나는 개인의 가치

국평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진정한 자아는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발견된다"고 말했습니다. 국평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역사를 바꾼 많은 인물들은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 평균적인 학생이 아니었고, 스티브 잡스는 평균적인 대학 교육과정을 거부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평균적인 커리어 패스'를 따르지 않고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평균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대기업에 취직하고,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결혼하고... 이런 것들이 국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건 시골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었다는 걸요. 국평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르게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남들이 말하는 '평균적인 삶'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보다 창의적인 도전을 택합니다. 평균이라는 기준은 단지 통계적 수치일 뿐,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국평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도 있고, 국평을 훨씬 넘는 사람이 늘 불안함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평균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평균' 안에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국평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압박과 불평등

국평이 유독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는 교육과 직업입니다. 학교에서는 '국평'을 넘어서는 성적을 받아야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취업 시장에서는 '국평 이상의 스펙'을 갖춰야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사회적 압박은 개인에게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안겨줍니다. 고등학생들은 국평보다 높은 수능 점수를 받기 위해 밤을 새우고, 직장인들은 국평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번아웃에 시달립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평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평균이라는 기준은 종종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국평 학력'이나 '국평 소득'과 같은 개념은 이미 사회적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평균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사회 구조적 문제는 간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국평 스펙'이라는 말이 얼마나 불평등한 개념인지 깨달았어요.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인턴십을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평균'이라고 불리니, 못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하게 되죠."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평균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삶에서 진정한 가치가 발견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초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국평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개성과 강점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의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국평의 시대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

국평이라는 개념이 강조되는 사회는 종종 획일성과 동질성을 추구합니다. 모두가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비슷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다양성과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재를 중시합니다. 평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만으로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사를 존중하는 '맞춤형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국평'이라는 단일한 기준보다 '다양한 기준'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잣대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인간의 지능이 언어적, 논리-수학적, 공간적, 음악적, 신체-운동적, 대인관계적, 자기성찰적, 자연친화적 지능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평균적 지능' 개념으로는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 내내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시달렸어요. 수학과 과학 성적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다중지능이론'을 알게 됐어요. 제가 대인관계 지능과 자기성찰 지능이 뛰어나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됐죠."


국평을 넘어서는 사회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기보다,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평균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재정의하기

국평이라는 기준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국평이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유용한 참고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모든 삶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찾는 것'입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돈인가, 시간인가, 관계인가, 건강인가? 무엇이 나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명확히 할 때, 국평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국평 이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영역, 관심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국평이라는 말에 스트레스 받다가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어요. '내가 이 일에서 평균보다 뛰어날 필요가 있을까?' 하고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더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죠. 결과적으로 제 행복도 높아지고, 오히려 성과도 더 좋아졌어요."


미국의 작가 랠프 왈도 에머슨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평이라는 외부 기준에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기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성장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건강한 자아 인식의 방법일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자신만의 강점을 키우며, 국평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평보다 '나의 기준'을 찾는 일이야말로 더 의미 있는 도전이 아닐까요? 평균을 넘어,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모든 순간이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평균을 넘어,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서

우리는 종종 '국평'이라는 말에 안도하거나 좌절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성장과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진 평균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재능과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삶을 설계해 나가는 개인들. 이것이 우리가 '국평'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요?


평균이라는 통계적 수치를 넘어, 자신만의 의미 있는 기준을 만들어가는 여정.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평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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