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생각났던 것보다 많이 순화된 표현을 제목으로 정했다.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학생 흉을 보는 교사였다. 교사들이 모여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것이 없다. 물론 교사들끼리 모이면 학생 얘기를 할 수밖에 없긴 하다. 학생이 곧 직업 생활의 대부분이고, 많은 경우 직업 생활에서 가장 크게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적 처치를 논하는 것이나 학생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과 학생 개인의 흉을 보는 것은 구분된다.
예를 들어 학생이 교사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상황에서 그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러니까 화를 낼 것인지, 엄격하고 단호하게 잘못된 점을 설명할 것인지,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알아줄 것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을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는 교육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걔가 원래 싸가지가 없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엄마랑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엄마도 똑같이 말했던 걸 보면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말들은 교육과는 상관없는 발화로 느껴졌다.
내가 무척 고고한 사람이어서 타인의 흉을 보는 것에 치를 떠는 사람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자꾸 남을 흉보고 싶어져 굳은 의지를 가지고 참아야 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있어 양쪽이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상황도 많지만 이 경우에는 단호하게 교사가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진다. 교사가 없는 자리에서 교사의 흉을 보는 학생이 무지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교사는 자기가 느끼는 것을 학생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정확히는 학생에게 직접 지도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예전에도 학생 흉을 전혀 안 봤다고 자신 있게 말은 못 하겠다. 감정이 쌓이면 못 참고 교육과는 상관없는 발화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후회했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교육과 거리가 먼,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발화를 자주 하는 교사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꼈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동료여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 나는 어떤가.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어차피 내가 말해봤자 학생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으로 학생을 지도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뒤에서 학생을 단정 짓고 흉보는 사람, 그게 나다. 내가 그런 교사가 되었다. 동료가 학생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 학생에게 저런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점도 있는데 전전긍긍하며 참견하고 싶었던 나는 없고 뭐라도 시도해 보려는 동료에게 '걔는 어차피 안 될 텐데'라고 말하는 내가 남았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학생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그걸 동료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도 있고 반대로 학생으로 인해 기분이 상한 동료를 위로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은 말을 해서 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생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보면 정작 학생과 대면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회피하고 학생을 비아냥거리거나 웃음거리로 만들어 순간의 감정을 해소하려고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진다. 학생에게 부정적인 면이 보일 때 한두 번 면피를 위한 형식적인 지도만 하고 제대로 논쟁 한 번 해보지 않았으면서, 그 학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정말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면서 원래 결함이 있고 개선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학생을 까내리려고만 했다. 그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예의도 아니지만, 더군다나 교사가 학생에게 가져야 할 태도는 정말 아니다.
힘들어서 그랬다고 합리화하고 싶지 않다. 내일 출근할 학교는 변한 것이 없겠지만 나는 다시 변해야 한다. 나는 다시, 뒤에서 학생을 흉보는 대신 '너의 이런 점이 나를 정말 불편하게 해. 하지만 네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라고 말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