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는 잊을 시간이 필요하다

열 번째 한 문단: 보호자의 연락

by 이선재

요즘 한동안 학년에 큰 사안이 없었다. 원래 교사들은 이런 말을 하면 보란 듯이 사안이 생길까 두려워하지만 이 말을 몇 번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사안이 없었던 걸 보니 혹시나 내일 사안이 생겨도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은 아닐 거다. 여하간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덜 힘들고, 학생들을 보며 웃을 여유가 생긴다. 사실 그전에는 수업하는 교실에서나 복도에서 학생들 얼굴을 보면 웃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보기도 싫었다. 연차가 쌓여서 권태로워지거나 성향이 변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힘들었던 거다. 여유가 생기고 보니 끊이지 않는 사안을 처리하면서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없었던 내 모습이 보인다. 내 시간에 여유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필요한 곳에 마음을 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보호자가 교사에게 퇴근 후에 연락을 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실천하려고 노력도 한다. 퇴근 후에 학교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휴식하거나 전환하는 시간을 가져야 다음날 학교에서 또다시 내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되려면 가능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저녁 학생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다음날 등교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보호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혹은 낮 시간에 교사와 도저히 상담할 수 없는 노동 환경에 놓인 보호자는 언제 상담을 해야 할까? 보호자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에 대한 이해와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바탕으로 교사에게 학교를 잊을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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