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휴가 간다. 비행기에서 아기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낫다는 판단 하에 아기용 헤드폰을 샀다. 이제껏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어 미리 연습을 시켜보려고 뽀로로 영상을 틀어주니 별이가 외친다.
“뽀~로!”
조금씩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했지만 탁 트인 발음을 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듣고야 말았다. 엄마도 모르는 사이 별이가 좋아하고 있었던 뽀로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의 의도와 상관없이 노출되는 캐릭터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뽀로로이다. 장난감, 양말, 수저, 그릇, 물컵.. 내가 사지 않아도 가족 중 누군가가 뽀로로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물건을 선물해 준다.
출산 후 인공지능 스피커를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TV 없이 육아하며 기나긴 하루를 보내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듣는 것은 라디오였고 지금도 그렇다. 스트리밍 서비스도 결제하여 동요나 클래식을 틀어놓고 아기 정서에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동요를 들려달라고 스피커에 명령하면 멜론 순위에 있는 노래를 차례로 틀어주었고 그 덕에 요새 어린이들이 있는 기관에서 어떤 노래를 즐겨 트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기에 상관없이 늘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뽀로로 오프닝송이었다. 캐릭터만 알았지 노래가 따로 있는지는 몰랐기에 유심히 들어보았다. 노는 게 젤 좋다는 뽀로로. 얘, 사실 나도 그래.
별이가 대학병원에 다니던 때에는 부리부리한 눈에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진지한 물리치료사님이 종종 그 노래를 불렀다. 아기의 정신을 쏙 빼놓아야 저항 없이 물리치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분이 뽀로로송을 유창하게 부르는 것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었다.
아기의 돌이 가까워 올 무렵에는 미끄럼 방지 무늬로 뽀로로가 그려진 양말 한 묶음을 선물 받았다. 별이는 영문도 모르고 뽀로로를 신었다. 주말 외출을 시작하면서 밖에서 쓸 스푼포크세트가 필요했는데 제일 저렴한 것이 뽀로로 그림이라 그걸 샀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던 날에도 뽀로로 그릇에 담긴 천혜향 간식을 먹었다. 치아관리를 시작하려고 양치송 영상을 찾았는데 당연히 뽀로로 양치song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뽀로로가 크롱과 함께 신나게 노래하며 칫솔질을 하는 영상이었다. 별이는 크롱처럼 입을 벌리고 양치질을 당했다.
정작 TV시리즈 한 편도 보지 않았으면서 나는 뽀로로에 익숙해졌다. 아기는 정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뽀로로를 좋아한다. 자주 보면 정이 드는 것일까? 엄마도 모르게 별이는 뽀로로와 친구가 되었고 오늘 그 이름을 비슷하게 발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