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작 Jan 28. 2021

바다의 의미

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 rawkkim, 출처 Unsplash



별이가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미지의 세계를 하나씩 탐험하던 별이가 드디어 '이름'의 존재를 깨우치고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 좋아하는 음식이 요구르트라는 것, 늘 보는 동그란 것이 전등, 네모난 것이 에어컨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된 것이다. 15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새로 산 장난감에 이름을 붙여주고 한참을 갖고 놀게 한 다음에 몇 번 그 이름을 불러주면 바로 습득한다. 그렇게 뻥이와 딸랑공이가 별이의 친구가 되었다.



비행기에서 쓰려고 헤드폰을 사 왔을 때는 탐색할 시간 없이 엄마의 말을 몇 번 들은 것만으로도 그것이 '헤드폰'임을 알아차렸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별이는 한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의 이름을 빠르게 습득한다.




별이와 처음 떠난 여행지는 제주도였고, 나는 아기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다. 별이는 보리차와 목욕물을 만져보았고, 손바닥으로 빗방울까지 느껴보았다. 첨벙거리거나 시원한 것을 물로 인식하고 있는데, 바다는 손으로 잡을 수 없고 한눈에 쏙 들어오는 대상이 아니다. 이걸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흐릿하고 텁텁한 날씨 때문에 바닷가까지 걸어가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한참을 걸어 모래사장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그 어떤 건물로도 가려지지 않은 탁 트인 자연을 본 별이는 신기함보다는 겁이 나는 눈치였다.



아빠가 별이를 안고 바다에 들어가려다 밀려오는 파도 공격을 받았을 때 아기는 울기 시작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 무리라는 결론을 내린다. 별이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려면 탐색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이다.



아이를 모래사장 한편에 세워놓고 저것이 '바다'라고 두 번 정도 말해주었다. 말해주면서도 습득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직접 만져보지 못했고 너무 광대한 것이었으니까.


"별아, 바다 어딨어?"


늘 하듯이 확인 질문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별이가 바다를 가리킨다.


"저거 바다야? 바다 뭐야?"


다시 가리키는 별이.


모래사장이나 파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수평선 쪽으로 손가락을 뻗어가며 가리키는 것에 놀라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인식해냈구나.

이 작은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제주도에 있는 사흘 동안 별이는 계속 '바다 어딨어? 바다 뭐야?'라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좀 귀찮아하긴 했지만 아기는 매번 손가락으로 바다 쪽을 가리켜 환호를 받았다.


별이가 내게 주는 경이로움은 끝이 없다. 이제는 이 아이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매 순간 든다. 소통을 하고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별에게 고맙다.






서울로 돌아와 문득 궁금해져서 바다가 어딨냐고 한번 더 물어보았다. 우리 집은 높은 건물들로 사방이 막혀있어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별이는 창문 너머를 휙 가리켰다.


김이 확 샜다. 별이는 그저 멀리에 있는 것이 '바다'라고 알게 된 걸까? 시야 너머에 있는 것을 '바다'라고 알게 된 걸까?

하지만 엄마는 꿈보다 해몽을 택하기로 한다.

별이는 저 건물들 넘어, 저 산들 너머, 비행기로 갈 수 있는 멀리 있는 섬에 평화로이 흐르는 푸른 바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아이일 거라고.

별이가 천사라는 나의 가정이 틀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2019.9.3.)

작가의 이전글 뽀로로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