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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an 25. 2021

아기와 엄마의 울음

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친한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모노레일을 타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근처에 아이를 안고 온 엄마가 함께 있었다. 아직 말을 하지 못 하는 아이였고 두 돌에서 세 돌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모노레일을 타려면 동굴처럼 만들어 놓은 대기공간을 지나 들어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동굴 속에서 아이의 비명이 시작되었다.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서 아이는 무섭거나 답답했을 것이고 돌고래처럼 높은 비명을 질러가며 온갖 짜증을 냈다. 이제 좀 멈췄다 싶으면 다시 시작되니, 처음에는 못 들은 척 넘겼던 나와 친구들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기다린 시간을 포기하고 돌아나가기는 아쉬웠다.



다시 한번 아이가 비명을 질렀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아! 시끄러워 죽겠네! 목소리가 동굴 속을 울렸다. 아이 엄마는 황급히 아이를 도닥이며 조용히 하자고 애원했고 아이는 토끼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렇게 몇십 분을 기다려 모노레일을 탄 우리는 한참 동안 그 모자 험담을 늘어놓았다.



20대의 일이다.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바로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 말도 안 트인 아이가 터지는 짜증을 조용히 삭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별이가 짜증 섞인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나 우유를 꺼내 달라고 하거나, 기저귀를 차기 싫다고 몸부림칠 때 등 예전에는 그냥 낑낑거리며 의사 표현했던 것이 모두 비명으로 대치되고 있다.



별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나는 패닉 상태가 된다. 안아 올리거나 도닥거리거나 그러지 말자고 타이른다고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빨리 알아차려야만 한다. 비명을 들을 때마다 숨까지 가빠진다. 헉헉대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별이는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울었고 나는 겨우겨우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이의 비명으로 옆집이나 아랫집에서 민원을 걸면 어떡하지. 어린이집 가서도 이러면 분명 선생님들이 싫어할 텐데 어떡하지. 오늘은 더 이상 요구르트를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별이가 더 자라서 말로 의사 표현할 때까지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방법뿐이라는 걸 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걸 희망으로 받아들일지 고통으로 받아들일지는 나에게 달렸다. 참 힘들다.



오늘은 그 모든 게 터지는 날이었다.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답답한 일들도 한꺼번에 찾아왔다. 친정엄마는 별이를 보러 왔다가 내 마음을 아무렇게나 휙 그어 상처를 내고 갔다. 이제껏 몇 만 번을 당한 일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저녁시간 별이를 씻기는데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또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속에서 압력이 차오르는 느낌에 항복하고, 나도 아이랑 똑같이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놀란 듯 한 별이는 더 큰 소리로 울었고 나도 똑같이 더 크게 울었다.



물기만 대충 닦고 큰 수건으로 아기를 감싼 후에 품에 안고 같이 울었다. 너무 짜증이 나서 스스로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정신 좀 차리라고. 난 왜 이렇게 육아를 하고 있는가. 나쁜 걸 물려주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해 놓고서. 별이의 잘못이 아닌데 왜 별이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터진 울음이 쉽게 그쳐 지지 않았다. 어쨌든 아이는 태어났고 나는 내 몫을 해야만 한다.



반 리터짜리 병 요구르트 절반을 빨대컵에 부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주었다. 이걸 먹는 동안 별이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것이다. 혼자 거실 매트 위에 널브러져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 별이가 눈치 보며 다가와 같이 울어주었다. 세상천지에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내 아기뿐이구나. 아기를 안고 도닥여주니 빨대컵을 문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일곱 시가 조금 넘었는데 밤잠에 들어버린 것이다. 더 아기였을 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당직인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일을 하다가 터져버린 울음과, 이제 겨우 앉기 시작한 아기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바로 누워 잠들었던 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별이는 잠을 자나보다. 나를 닮았다.



내일 아마 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 발버둥 칠 것이다. 오늘 그랬던 것처럼. 



불안정해 보이는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할 때 어린 나는 오만 상상을 했었다. 무서웠고 곁에 있고 싶었다. 별이도 비슷한 심정일까.



오늘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 어쨌든 모든 것은 나아질 테니...

그걸 주문처럼 외운다. 


(20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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