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타이틀을 단 산모교실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근처 서점에 들어갔다. 중기에 접어든 임산부는 가장 먼저 육아 책 판매대로 갔고 그중 인기도서 칸에 있는 육아서 하나를 집어 든다. 아이를 엄마에게서 최대한 빨리 분리할 방법, 편하게 육아하는 방법, 그래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논조의 책이었다. 몇 장을 넘기다 주어진 자유시간이 다해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산모교실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의 위대함과 괴로움을 동시에 설명하는 강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빽빽하게 필기를 남겼다. 그는 이유식과 밤중 수유와 치아 관리의 중요성을 피력하다 훈육을 이야기하다 분유 광고를 했다. 나가는 길에는 임산부 학생들에게 선물을 한 아름 들려주었다. 양손의 짐 때문에 다시 서점에 들러 책을 마저 볼 여유가 없었기에 집으로 돌아와 몇 권의 육아서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것만 읽으면 단시간에 아이를 분리해 놓고 나만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별이에게 바란 것은 얼른 혼자 먹고 자고 놀면서, 아이의 귀여움과 부모라는 진중한 타이틀을 종합 선물세트로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육아를 책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나,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인 그것을 책이나 산모교실 없이 무던하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예상대로 책과 강의에서 얻은 지식은 별이에게 적용하기에 너무 제한적인 것이었다. 늘 급작스러운 상황이 생겼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며 울었다. 겪기 전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날 산 것 중 하나는 수면 교육에 관한 책이었다. 외국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분리 수면이 당연한 일이며 아기는 다 같으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아이가 분리를 거부하며 울 때는 얼마간 양껏 울리고 그 후에는 이렇게 하라는 지침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신생아 별이의 엄마로 졸려도 잘 수 없는 밤을 보내며 나는 고문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누구도 말해 준 적 없기에 배신감이 컸다. 얼른 별이를 떼어내고 단 몇 시간만이라도 푹 자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양호한 거라며, 나의 모성과 참을성을 탓했다. 배신감에 분노가 더해졌다. 이 아이가 나를 해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분리 수면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별이에게, 50일도 채 안 된 별이에게, 반쯤 미쳐 있는 상태로 수면 교육을 했다.
별이는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나중에는 목이 쉬었다. 신생아의 울음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책에서는 교육 중 엄마가 못 참고 안아주면 아기가 그 틈을 기막히게 알고 이용한다고 했다. 이만큼 울면 결국 우리 엄마는 져 주는구나, 날 안아주는구나, 생각하고 다음번에도 똑같이 한다고 했다.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없으니 독한 마음을 먹고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숨이 넘어가게 우는 별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이겨낼 수 있어, 별아. 넌 이겨낼 수 있어.’ 하며 책에서 본 주문을 읊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난 지금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어 진다. 별이는 결국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다. 그 얼굴이 유난히도 평온해 보였다. 오랜 세월을 산 자가 생 앞에 체념한 후 얻는 평온 같은 표정이었다. 입은 앙다물어져 있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이겼나 싶다가 내가 무슨 일을 한 건가 싶어서. 절대 너를 안아주지 않을 것이며, 안기고픈 욕구는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니 잘 참아보라고 주문을 읊던 여자가 이제는 잠든 아이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
다음 날부터 별이는 배변하지 않았다. 소변 기저귀는 정상적으로 나왔으나 이틀이 넘도록 대변이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분유를 바꾸어야겠다고 소란을 부렸다. 매일 장 마사지를 해 주어야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8일, 9일 정도 되었을 때 공포에 질려 아이를 소아과에 데려갔고 의사는 아기가 너무 어려 걱정되긴 하지만 어머님이 원하시니 관장을 해 드리겠다고 했다. 별이에게 관장약이 처치됐다. 별이는 쭈그린 자세로 안겨 노인 같은 표정으로 기저귀에 변을 보았다. 그 채로 집에 돌아와 어마어마한 양의 기저귀를 처리해야 했다. 작은 아이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기에 이런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하기도 한다는 걸 들었다. 과학적 근거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때부터 내게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엄마를 계속 불렀고 울었어. 그런데 엄마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어. 앞에 있었으면서 엄마가 이상한 말만 하고 안아주지 않아서…. 무서웠고 나중엔 슬펐어. 별이는 그날 짓던 표정과 긴 울음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육아서를 정리했다. 남겨놓을 것과 정리할 것이 명확하게 구분됐다. 아이를 최대한 빨리 분리해 준다는 책, 부모의 완벽하고 프리한 일상을 보장해 준다는 책, 아이를 더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로 만들어 준다는 책은 정리 대상이었다.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존재를 기꺼이 안고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과 같다. 그래서 자유로운 일상은 더는 내 것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감수할 수 있다 매 순간 다짐하는 일이었다. 나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나의 소유는 아닌, 복잡하고도 거대한 존재를 온전하게 사랑하겠다는 결심이어야 했다. 어리석은 나는 그걸 미처 몰랐으나 그럼에도 엄마를 찾아온 별이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있고 나는 때로는 부족하게 때로는 고단하게 그 아이의 성장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책장에 남은 것은 엄마 역할과 애착에 관한 책 몇 권이다. 별이를 키울 때 내 지침이 되어 줄 책이다. 숨 막히는 엄마 됨의 과정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큰 산이 여럿이겠지만 별에게는 내 인생에 그만큼 개입할 권리가 있다. 사랑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 직접 겪기 전에는 어떤 책과 공부로도 실마리 잡을 수 없던 그것을 차례차례 알아가며 별은 자랄 것이고 나는 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