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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l 22. 2021

#회장#옙븜#그냥_조음#이유없이#끌림

학교와 학교 - 책상 위 쪽지

 

학급회장이 된 친구에게 남긴 쪽지


 그 시절 문화는 아무래도 좀 독특했다. 얼마나 독특했냐하면, 전교 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원을 모집하는 기준부터가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윤주는 재야의 춤꾼이었는데 그때 마침 한 손으로 무게를 지탱하며 몸을 공중으로 솟게 하는 고급 댄스 기술을 익히고 있던 참이었다. 윤주는 학생회장 후보 1번의 선거운동원이 되었다. 후보들은 쉬는 시간마다 각 교실을 돌며 자신을 뽑아달라고 소리치며 공약이나 포부 대신 ‘이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비장하게 선언했고,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을 받쳐 입은 윤주가 교탁 앞으로 나와 갈고닦은 기술을 선보였다. 반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와’하는 함성이 아이들의 목 안쪽에서 나올락 말락 했다. 아무래도 ‘와!’ 보다는 ‘와…….’에 가까웠을 거다.   

  



    


 매년 학급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무인 양 지명을 받아들였고 어렵지 않게 회장이 됐다. 학급회장을 거듭하며 전교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 다음 순서는 전교 회장 후보로 나가는 것이다. 전교 회장 선거는 매년 단 한 번뿐인 행사여서 일 년이 저물어 감과 동시에 새로운 대표가 탄생하리라는 묘한 기대감으로 전교를 들썩이게 하곤 했다. 대부분 크리스마스나 연말 부근에 있었던 이벤트였기에 더욱 그랬던 것일지도. 후보에 오른 아이들은 자신들이 공인된 인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빛났고 당당했다. 그들 중 누가 회장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학창 시절 내 친구들은 나를 꽤 좋아했는데, 아니, 좋아했다기보다는 꽤 신뢰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자주 학급회장 후보에 오르곤 했다. 주로 몇 표 차로 부회장이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긴 했는데, 아니, 꽤 신뢰하는 편이었는데, 그렇다고 제일로 신뢰하지는 않는 그 정도의 관계였던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경쟁 후보로 붙어 그녀들을 제치고 부회장이 되면 승리한 자의 불편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괜히 아이들 근처에서 뭐 하나라도 더 주려고 노력하곤 했다. 당시 나는 감정을 세분화해서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 마음이 ‘미안함’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정당한 투표를 통해 얻은 자리에 미안해하기까지 할 일인가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다. 그때의 세밀한 감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새로운 감투를 씀으로써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달라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향적 자기중심적 인물이었다고 이름 붙여도 될는지. 그러니까 당시 나는 모호한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흘러갈 법한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지.          





 “저는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요. 작년까지 여러 번 해 봐서 또 하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고요….”



 개인 면담에서 원준이는 그렇게 말했다. 2학기 학급회장 선거를 앞두고 몇 번이나 지원자를 받아도 나오지 않자 결국 학급 아이들에게 사전투표로 ‘회장 추천’ 후보 – 회장 후보 아님 주의! – 를 추리던 참이었고 원준이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원준이에게 학급회장이란 골치 아픈 일들만 도맡게 되는 불편한 자리였고, 5시간짜리 봉사시간 따위 안 받아도 그만이므로 굳이 후보로 나설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 회장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까지 ‘될 만한 인물’이 지원하지 않는 건 비상상황이다. 그래서 사전투표라는 추천 절차를 거쳐 원준이를 면담 자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음…. 원준아. 아이들이 널 많이 믿고 지지하는 거 알지? 선생님도 네가 회장 하면 참 잘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후보 지원을 하지 않더라고. 너만 괜찮으면 단독 후보라 100% 당선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내켜?”          



 난처한 상황이 되니 말이 길어진다. 원준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온갖 칭찬을 퍼붓기 시작한다. 수업 태도부터 인성 찬양,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모아 온 다양한 칭찬을 전달하고 이 아이가 얻고 있는 인기에 부럽다는 감정까지 전달하고 나니, 역시 말이 길어졌다. 다행히 거짓은 하나도 없었으며, 원준이는 그만큼이나 사랑받는 아이였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하고 애들이 원한다면 그냥 할게요.”     



 원준이는 어렵게 승낙했다.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고 난 후,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대표가 되어달라고 읍소하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온다. 별로 내키지 않으나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그 감투를 쓰겠다는 원준이의 무거운 결심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그렇게 그는 한 학기 동안 덤덤히 그 자리를 지켜주었고 나는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원준이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 진애는 매우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낯 가리는 성격이다가 무대를 주면 화려한 주인공으로 돌변하는 아이였다. 그 해엔 대입이라는 버거운 벽 때문인지 학급 임원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유일한 후보자였던 진애가 회장이 되었다. 진애는 담임선생님께 귀염 받는 학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이 누군가를 특별히 예뻐한다는 사실은 모두의 피부로 감지되기 마련이다. 착실한 진애는 선생님의 충실한 비서이자 우리들의 리더로 활약했다.          



 그해 담임선생님은 본인의 생일을 자꾸 언급하던 사람이었다. 본인 생일이 있는 달이 돌아오자 점점 빈도가 심해졌다. 담임교사가 되어보니 반 아이들에게 기념일과 관련된 말을 꺼내는 것은 보통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극도로 민망한 일이다. 더군다나 법으로까지 금지된 어떤 일을 부추기는 것 같지 않은가. 무조건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그때와 그분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진애는 그런 신호를 잘 감지하는 아이였고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조회 시간 아이들을 모아놓고 얼마씩을 걷어 무슨 선물을 살지 학급회의를 열었다.      



 “아니, 그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데?”     



 날카로운 반대 목소리가 있었고,     



 “며칠 전에 그 난리를 쳐 놓고 무슨 선물이야?”     



 예전 일을 들먹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안타깝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두 목소리가 물꼬를 트자, 불만 섞인 친구들의 음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진애는 교탁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불만 섞인 목소리는 담임을 향해 있었지만, 하필 그 자리에 진애가 서 있어 대신 그 화살을 맞아야 했다.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회장을 도와주려는 듯 수업 종이 울렸고 모금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회장은 같은 주제를 아이들 앞에 다시 꺼내지 않았으며, 몇몇 아이들만 모여 담임선생님의 선물을 따로 챙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담임이 그 건에 대해서 코멘트를 했던가, 안 했던가. 사실 어떤 쪽이었어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주눅이 들어 반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도 힘들었을 상황을 겪고 나서도 진애는 줄곧 올곧았다. 자기 일을 느슨하게 하지도 않았고 학급 일도 성실히 해냈다. 다시 교탁 앞에 서는 일이 생겨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애에게 그 한 해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잊고 싶은 한 해였을까, 아니면 뭐든 시도해 보았기에 후회도 없는 그런 한 해였을까.






 표를 받아 집단의 대표로 선출되는 것은 종종 그 기준을 알 수 없어 결과가 나오기까지 안심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청소년들의 기호는 특정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 힘든 것이며 상대의 말투 하나, 복장 하나로도 변하기 일쑤다. 원준이를 지지하던 친구들은 학년 말이 될 때까지 지지를 이어갔지만, 진애에게 한 표를 던졌던 친구들은 한순간에 지지를 철회하고 그녀를 주저앉혔다.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얻는 것은 반대로 그 시선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여럿에게 사랑받아 대표가 되는 아이들에게 어떤 ‘기운’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운을 가진 것은 축복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늘 성실한 모습에 믿음이 가는 친구든, 성적이 좋아 여러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을 얻는 친구든, 호감 가는 외모로 큰 노력 없이도 인기를 얻는 친구이든, 끝내주는 춤 실력을 갖춘 선거운동원 덕에 덩달아 좋아진 친구이든 간에.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런 사랑을 두려움 없이,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곤 했다. 이건 비단 청소년기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글에 쓰인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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