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 별이를 사랑하는 일
날씨가 더워지자 별이는 불편한 기상과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이집 방학으로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심술을 모두 터뜨리는 듯한 기분이다. 그동안 꾹꾹 참아 왔던 응석이 눌러놓았던 압력 그대로 밖으로 터져 나와 주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연속 아이가 좋아하는 곳을 돌아다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였지만, 역시 그것만으로 부족한가 보다. 그 심술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에서 별이가 던지는 물건에 몸을 맞고, 아이 손톱에 얼굴을 긁혔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니 인내심이 바닥나 내 존재까지 파 먹히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는 폭발하고, 별이 앞에서 목놓아 함께 울기도 한다.
일하는 엄마 아래서 매일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에 별이의 응석과 신경질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린 나의 최대 난제는 왜 엄마는 내가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없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별이는 돌이 갓 지나고 던져지듯 어린이집에 출석 도장을 찍어야 했는데, 울지도 않고 먹고 자는 것을 잘한다는 코멘트에 이것이 칭찬인지 영업 인지도 모르고 아이의 적응력을 뿌듯해하던 별이 엄마였다. 엄마의 엄마가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는 누구도 모르는 사이 반복되고 있었다. 체력과 정신력의 부족으로 모든 피로가 아이에게 전가되는,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던 고단한 날들. 복직을 기점으로 그 피로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자아와 고집이 생긴 별이는 점점 더 버거운 존재가 되어갔다.
오늘도 역시 더웠다. 별이는 울었다. 고구마 크로켓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 냉장고 안에 있을 텐데 엄마가 다 먹어서 없다고 말해서였다. 그걸 만들어 별이의 저녁으로 먹인 일은 벌써 이틀이나 지난 일인데 별이는 그게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요구르트를 내놔라, 아이스크림을 내놔라, 온갖 심술을 부리다가 토스트를 만들려고 잘라놓은 빵을 뒤엎고 엄마를 꼬집으려다가 결박당했다. 손목을 잡으면 너무 아파하기에, 아이를 품에 세게 안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 교정해 주어야 할 잘못임에도, ‘아파요, 아파요.’ 하며 우는 별이를 보면 저지하던 손을 풀고 품에 안는 수밖에 없었다. 패배를 선언한다. 뭐, 딱히 패배라고도 할 수 없다. 나의 제압으로 별이가 아파 운다면 그것이 더 처절한 패배가 될 것이니. 종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한참 울다 그친 별이는 손톱깎이 세트를 가지고 공기청정기 송풍구에 끼워놓는 장난을 하더니 이제는 버블건을 가지고 놀겠다며 밖에 나가자 조른다. 밤잠 재울 때 입었던 민소매 티에 짧은 바지 하나만 걸쳐 입히고, 나 또한 아무렇게나 반소매 반바지 차림을 하고 1층 놀이터로 나갔다. 버블건을 가지고 논 시간은 30초도 안 됐다. 곧 별이는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까지 타려고 하다가, 엄마와는 대체 무게가 안 맞아 재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럼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당당히 요청한다. 별이가 하고 싶으면 그리되리라….
짧은 영상 통화로 할머니의 허락을 받은 후에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넓고 쾌적한 할머니 집에서 별이는 다람쥐가 된다. 높은 소파에 올라가 매달리다가 의자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놀이를 한다. 피아노 놀이와 관리사무소 놀이도 한다. 기분 좋을 때 하는 온갖 즐거운 놀이를 모두 거기서 한다. 그냥 풀어만 놔도 신나 있기에 엄마는 한동안 늘어져 있을 수 있다.
오늘은 백신 접종이 있는 날이다. 아무리 금세 끝나는 접종이라 해도 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던 터라, 별이를 데리고 갔다. 별이는 엄마가 주사를 맞으면 내가 손을 꼭 잡아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당당하고 귀여운 허세를 어찌하리. 별이는 이런 식으로 내게서 사랑을 받아 간다. 늘 샘솟는 사랑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다. 별이와 내가 주고받는 사랑으로 서로를 채워주는데, 가끔은 주머니가 고갈되어 고단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하지만 지치지 않는 별이가 사랑을 공급해주면 금세 살아나는 그런 나날들이다.
별이와 함께 본가에 다녀오겠다는 아이 아빠의 말에 며칠간 쓸 아이 물건을 가방에 가득 담아놓았다. 신나서 집을 나서는 별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나는 내심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하는 아침을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면제받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다.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사랑 주머니가 채워지지 않으니 그것은 다시 깊은 외로움으로 연결된다. 무슨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어둑하고 습한 외로움이다. 문득, 이제 나는 별이 없이는 못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으면 별이가 살 수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어떤 엄마보다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고 그리 다짐했었는데, 정작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쉼 없이 울어대는 별이 앞에서 인내심의 바닥을 친 내가 12시간이 지난 지금은 별이가 없으면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 사랑은 어찌 이렇게 이상하고 아름다운가. 정말 별이가 태어나고 나서 겪는 일들은 하나같이 새롭고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