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만한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 전에는 원 가족이 그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하며 살았다. 사는 것이 그리 즐겁고 신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삶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가족이 함께 어울려 가끔 울고 많이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인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결혼을 선택한 것은 또 다른 가족이라는 우산으로 들어가 그런 삶을 이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쇠약해져 가는 아빠, 더 기분을 맞춰드릴 수가 없는 엄마 사이에서, 뭐 견디라면 견딜 수 있었겠지만, 더 행복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요약하자면 나는 더 행복해지고 싶어 이 제도에 투신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었음을. TV나 영화에서 보이는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속 사정은 저마다 달랐다. 튼튼한 알맹이로 가득 찬 가족도 있는가 하면 실은 텅 비어 바람만 휑하게 부는 가족도 있는 것이었고. 다만 몰랐을 뿐이다. 타인이 보는 것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그 자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자의적인 것이다. 행복은 균형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지탱하고 있는 것이 행복이다. 가끔 밖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를 무방비 상태로 맞아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속도와 세기가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조화로운, 균형 잡힌 행복은 꽤 거뜬히 유지된다. 그래서 행복은 쾌락처럼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잔잔하고 차분한 상태를 일컫는다. 홀로 앉아 글을 쓰는 이 시간처럼.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만으로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의지하며 살기를 원했던 나의 선택은 나사 몇 개가 빠져 있어서였는지 아주 성공적이지는 않다. 균형이 맞지 않아 덜컹거릴 때가 너무 많다. 그럴 때마다 원 가족을 찾아 가 위로받는다. 집은 따스하고 차분하다. 내게 음식이나 과일을 챙겨 권해주는 유일한 곳이다. 아무렇게나 자른 복숭아 조각과 깍둑 썰기한 수박 조각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조화로운 균형에서 오는 잔잔한 행복감을 느낀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