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작 Aug 22. 2021

친구야, (공평하게) 사랑해

학교와 학교 - 쪽지에 적은 메시지와 낙서

 그해 담임을 맡은 반은 여학생 15명, 남학생 16명으로 성비 구성이 적절했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단합이 잘 되었고 공부도 곧잘 하여 ‘반 뽑기를 잘했다’라며 동료 선생님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앞에 나서지 않는 친구들의 수만큼, 두 배 세 배로 적극적인 친구들이 함께 있어 적절히 어우러졌다. 유달리 까칠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 아이를 다독거릴 만큼 넉넉한 친구도 있었다. 조화와 균형이 대단했던 반이다.



 특히 여학생 15명은 전례 없는 화합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두 무리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룹끼리 반목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교류하며 잘 지냈다. 말하자면 성향에 따른 베이스캠프를 든든히 뒷받침해 두고 상황에 따라 이 친구 저 친구와 잘 어울리는 그런 반이었던 거다. 이전 해에는 한 달 단위로 터지던 학급 내 갈등 상황을 중재하느라 일 년 내내 시달렸던 터였다. 학급 배치를 관장하는 신이 ‘그동안 수고 많았다. 올해는 기쁘기만 하여라.’ 하고 선물을 준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다.



 2학기 수련회를 앞두고 같은 방을 쓸 멤버를 정하는 회의 날이었다. 적어도 2박 3일간 같은 방을 쓰면서 숙식을 함께 해야 하는 터라, 묘한 긴장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다녀와서 단합을 이루는 반이 있는가 하면 크게 분열되는 반도 있다. 교사들의 긴장도도 덩달아 높아져 있었다.


 “선생님, 여자 방은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여자 회장을 맡고 있던 주혜가 아주 깔끔하게 팀 정리를 해 왔다. A그룹과 B그룹으로 정확히 나누어져 있었고 인원 구성도 8대 7로 완벽했다.


 “벌써 다 했니?”


 답하는 내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 있었을 거다. 아, 순둥이들! 게다가 무던한 남학생들은 어느 방에 가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서로의 시간을 아껴 주었다. 하긴 누구와 붙여놓아도 왁자지껄 요란스럽게 놀 수 있는, 흥이 넘치는 아이들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해 친구들에게 너무 푹 빠져서였는지, 나는 냉정한 담임이 되겠다는 3월의 굳은 결심을 잊고 아이들에게 깊이 동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서 힘이나 조언을 얻기도 하고, 아이들의 고민을 내 것인 양 끌어안고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서로에게 열린 마음이 가진 힘을 매일 느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좋을 때는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거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그 한 마디가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했다. 아, 복덩이들!     






 사실 나는 그해 그 반의 학생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던 친구들 간의 미묘한 관계와 세력 다툼,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가 누구와 놀고 그 복잡한 거미줄 안에서 갈 곳 몰라 헤매던 기억….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선생님이 일 년 내내 불편했던 기억, 털어놓지 못할 비밀을 속으로 끙끙 앓아야만 했던 기억까지. 나는 선생님이 누군가를 혼낼 때 늘 대신 혼나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공기와 날카로운 말은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었으니까. 그걸 감지하는 레이더가 유달리 발달하여 나는 늘 함께 혼났고, 혼자 힘들어했다.     






 새 학년에 진급하고 가깝게 다닐법한 친구가 윤선이뿐이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붙어 다녔었다. 거의 한 학기 동안 그랬다. 시간이 지나며 어울리는 친구들이 달라지고 그룹이 재편되는 것은 예삿일이나, 그해 우리 반에는 한 번 정해진 그룹이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그룹이라든가, 엄마들끼리 알고 지내는 그룹이라든가. 내가 파고들 다른 틈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서 선택지는 윤선이뿐이었다. 이 아이와 더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고 싶었다. 한 반에 단짝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서럽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잘해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때였으므로, 윤선이와 나는 대화를 나누고 점심을 같이 먹고 체육이나 음악 시간에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삐걱대며 관계를 유지해 갔다. 친분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 필요를 기반으로 한 단짝이었다.



 내게 윤선이가 ‘잔인한 아이’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때가 하필 수학여행 중이었다는 데에 있다. 그 전에도 슬슬 나를 귀찮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애써 외면하며 관계를 유지하던 중이었고, 어쩌다 윤선이가 나를 놔두고 다른 아이와 매점에 갔다는 걸 알게 됐을 때도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스스로를 속이던 중이었다.

 수학여행 중 우리 반은 모두 같은 방을 썼다. 수학여행만 전문으로 하는 기관은 아주 아주 커다란 방에 색이 바랜 이불을 몇 채 쌓아놓고 거길 숙소라고 이름 붙여놓았다. 숙소보다 창고에 가까웠는데도. 나는 짐가방을 윤선이 가방 옆에 풀어놓고 물었다.


 “윤선! 몇 시까지 집합이래?”

 “……몰라.”


 윤선이는 대답이 조금씩 늦었다. 내가 오늘 좀 귀찮게 굴었나? 그 옆에는 윤선이가 몇 달 전부터 나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듯한 다른 친구가 짐을 풀고 있었다. 기분 나쁘고 속상한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나는 또 나를 애써 속여야 했다. 지금 나는 신나는 수학여행 중이니까. 여행지에서 친구 없이 혼자 다니면 더욱 창피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윤선이는 마지막 날까지 나를 외면하고 만다. 낯선 장소에서 식사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어색한 경험인데, 그 애 덕분에 그걸 혼자 해야 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윤선이는 다른 친구와 쪼르르 방을 나가 버렸고, 나는 주섬주섬 신발을 꿰어 신고 식당 쪽으로 혼자 나갔다. 반별로 식사 시간을 정해놓기는 했지만 누가 몇 반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북적 긴 줄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충 아무 데나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오면 밥을 먹었다.


 “너 혼자 먹어?”


 어색하게 줄 끝에 서 있는데, 같은 동아리를 했던 세진이와 세진이의 절친인 선영이가 말을 걸었다.


 “응….”

 “박윤선은?”

 “어, 있잖아….”


 잔뜩 쭈그러져 있던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아니, 걔가 혼자 가잖아!! 아니, 혼자 갈 거면 말이라도 하고 가지 그냥 무시하고 혼자 가는 게 어딨냐?!”


 급발진이 이런 것인가. 소심하게 우물대던 내가 갑자기 뭔가가 탁 풀린 듯 큰 소리로 윤선이를 탓하기 시작했다. 700여 명이 소란스럽게 대화하는 광장에서 나의 목소리가 커봐야 얼마나 컸겠느냐마는, 평소 조용하던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 사회 선생님이 와서 한마디 하고 갔다.


 “질서를 지키자. 목소리 낮춰라.”


 나만큼이나 소심했던 세진이와 선영이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눈으로 말했다.


 - 너 우리랑 같이 밥 먹어.


 2박 3일간 나는 이들과 함께 다니며 간식도 사 먹고 멋진 사진도 찍었다.



 학교로 돌아오고도 한참이 지난 후, 연말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시즌에 윤선이는 내게 사과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나와 다니기가 그냥 싫었다고, 계속 모른 척해서 너무 미안했다고. 이후로 새 친구를 찾느라 고생했던 몇 달을 윤선이가 알 리 없었다. 독불장군 희진이와 친해질 뻔하다가 실패하고, 작년부터 같은 반이었던 유정이와 지희 팀에 들어가 보려다가 실패하고, 결국은 세진 무리에 별책부록 정도의 느낌으로 끼어 그 해를 마무리했단 걸 그 아이가 알 리 없다.     




 

무리 속 친구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낙서



 지금도 여전히 한 반 안에 여러 무리와 그룹이 존재한다. 3월부터 시작되는 탐색전은 내게도 보일 만큼 예민하게 치러진다. 뛰어난 발표 솜씨와 적극성으로 3월부터 이름을 날리던 다영이는 그 반의 든든한 리더가 될 것이 확실해 보였으나 한 달을 못 채우고 아이들 눈 밖에 나게 된다. 반면 서연이를 필두로 모든 아이가 착착 단합되던 3반은 2학기가 시작된 현재까지도 탄탄한 교우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아이들은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 매번 사랑을 말하고 쪽지를 보내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서로를 언급한다.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화장실에 같이 다니며 관계를 다져간다. 준비물을 빌려주거나 깜짝 선물을 하며 능숙하게 관계를 컨트롤한다. 아이들을 보며 미숙했던 나를 돌아보고, 당당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속여야 했던 때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 이제 나는 조언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들 옆에 머문다.



 너희들 사이에 무엇이 있니. 그것은 너희에게, 그리고 그때의 내게 왜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을까.




※글에 쓰인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오후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