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작 Nov 13. 2021

생명존중교육 단상

학교에서는 1년에 두 어 번 생명존중 교육을 진행한다. 교실 자기 자리에 앉아 관련 프린트를 하나씩 받고, 방송실에서 전교에 송출하는 화면을 보며 강사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아이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강의를 하는 강사는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판에 박힌 말들과 공허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뿐.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들 심드렁하고 피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이었다.



강사는 자살이나 자해를 정의한 후, 그것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표로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제시된 해결방안은 맛있는 음식 먹기, 좋아하는 향 맡기, 친구 만나기, 햇볕 받고 운동하기 등이다. 맛있는 음식과 땀 흘리는 운동으로 우울감이 휘발되는 경험을 자주 했기에 영 딴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것이 와닿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자해할 정도로 깊은 우울 정서를 가진 아이들이라면 더욱, 뭔가를 하고픈 욕구마저 사라진 지 오래일 테니까 말이다. 강사는 “맛있는 것을 드세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세요!”하고 하이톤으로 전달했다. 나는 속으로 ‘우울할 때 친구 만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강의의 끝에는 예쁜 풍경 사진이 배경으로 떴고, 강사는 여전히 유쾌한 목소리로 “괜찮아요! 다 지나갑니다. 괜찮아요!”라고 외쳤다. 강사가 넘기는 PPT 화면이 스크린에 공유되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 강사의 얼굴도, 나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였다. 3월부터 보아 온 선생님도 아니고 오늘 처음으로 목소리로만 만난 사람이 어쩌면 일생일대의 인생 고민에 빠져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 지나가니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낯선 이가 가볍게 던지는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은가요?



아이들은 강사가 던진 질문의 답을 프린트에 적었다. 나는 언제 우울한가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요, 같은 기본적인 질문이 적혀 있었고 역시나 심드렁한 아이들은 흘려 쓰듯 단숨에 프린트를 완성했다. 강의가 끝나자, 뒷줄에 앉은 아이가 그 줄의 모든 프린트를 걷어 교탁 위로 전달했고 나는 그걸 반장에게 전달했고 반장은 번호순으로 추려 담임교사에게 전달했다. 여기에 쓰인 내용은 생활기록부 창의적체험활동 항목에 적당히 녹아 기록될 것이다. ‘생명존중교육’이라는 타이틀로.



교실에 앉아 있는 서른여 명의 학생 중 그 누구도 오늘 교육을 계기로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된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안다. 아이들은 지루한 저 강의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래야 곧 점심을 먹을 수 있으므로 프린트도 재빨리 해서 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이 교육을 해야만 하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섭외할 수 있는 사람 중에 아이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스타 강사는 없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사교육을 익숙하게 받는다. 들은 바로는 인기 많은 영어학원에서는 매일 100개에 이르는 영단어 시험을 본다고 했다. 학원 거리 앞에는 큰 가방을 메고 손에 스프링으로 제본한 단어 책을 든 아이들을 늘 목격한다. 이것이 학생들의 목을 옥죄는 일인가 묻는다면, 딱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아이들은 거기에 적응했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재미있는 일을 찾으며 살아간다. 말로는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또 주어진 것은 열심히 해 가려 하고 이 과정이 왜 필요한지 대체로 이해한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청소년들이란, 학원에 찌들어 인생의 행복을 모르고 학업 스트레스로 하루를 온종일 채우는 집단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는 강사들은 늘, “여러분 공부 스트레스, 학원 스트레스 많이 받죠? 그것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을 거예요.” 하고 운을 뗀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이렇게나 많이 받는 아이들에게 학업 스트레스는 못 이길 고통 따위가 아니라고요. 늘 나는 그렇게 속으로 대답한다.



우울과 무력감에 빠진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라며 자살하지 말라며,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라는 공허한 외침이 필요한 게 아니다. 차라리 행복에 대해 강의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얻고 쟁취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성취로 인한 행복은 그 지속력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 그 때문에 깊은 허무감을 같이 데려와 오히려 어두운 동굴 속으로 나를 밀어 넣기도 한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을 세세히 함께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학원에서 10시까지 엉덩이 아프게 앉아 있더라도 친구들과 귀가하는 그 밤공기에서 행복을 느끼고, 편의점에서 나누어 먹는 라면 하나, 삼각김밥 하나에 즐거움을 느끼고, 영어 단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에 성취를 느끼고, 집에 돌아와 나를 반겨 주는 부모님의 얼굴에 사랑을 느끼는 그런 날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잔잔한 행복은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고, 나의 ‘생명’은 ‘존중’된다. 살아 볼 만한 삶, 가치 있는 삶은 그리 비장한 곳에 있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 별이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K-디스토피아의 현재와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