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꼭 챙겨 듣는 팟캐스트가 있다. 아이 밥을 차릴 때, 치울 때, 청소하거나 빨래 갤 때에 주로 듣는데 에피소드가 매주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늘 주말을 이것과 시작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유튜브로 거처를 옮겼음에도 꿋꿋이 라디오 기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팀에게 고맙다.
여기에는 매주 신간을 낸 작가들이 게스트로 나온다. 진행자는 작품을 바탕으로 그들과 인터뷰하고 작가 각자의 개성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특히 현대문학계를 이끌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젊은 여성 작가들의 인터뷰를 듣고 있으면 말 그대로 '재미'가 있다. 공감 요소도 많다. 글이 아닌 목소리로 전달되는 작가의 생각은 우리가 수다를 나누는 친구 사이인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요즈음 급부상하는 여성 작가들에 내 또래, 또는 내 바로 위 선배 격인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 속 진중한 이야기와 대비되는 통통 튀고 나풀나풀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리나 카페에서 곧잘 들리는 말투, 발성기관을 약간 누르면서 높은 톤으로 온갖 간투사를 넣어서 다다다 단숨에 뱉어내는 그런 말투를 구사하는 작가의 경우가 그랬다. 반면, 글만큼이나 해저로 파고드는 듯한 우울 자체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황정은, 김애란 작가가 그렇다. 이 두 사람의 글은 읽을 때마다 출처가 확실한 우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이야기에 내가 감정적으로 동조한다는 것에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다시금 독서를 취미로 되찾아 오게 된 계기가 된 작가가 김애란이었고, 그 작가는 정말로, 그런 말투를 쓴다. 황정은 작가가 이 팟캐스트의 새로운 진행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놀랐다. 염세적이고 신경질적인 느낌의, 음성에 바람 소리가 많이 나고 정적이 많이 뜨는 라디오 진행자라니 그동안 가진 편견을 깨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말 그대로 편견. 작가님 귀여운 편이어서 진짜 나 얼떨떨함...;;;) 글과 비슷한 느낌의 목소리는 천선란, 김하나 외 다수. 글과 목소리의 시너지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뇌 속에 침투되는 기분이었으며 이로써 진정한 '통일성'이란 작가의 목소리에까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봤다. 그리고 확신의 신뢰감과 전달력은 김겨울. 저런 목소리와 톤을 타고난 것은 진정 축복이다.
다음 주 중으로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내가 진행해야 한다. 이곳 선배님들이 이 정도로 까칠한 지 몰랐던 지난 3월 연수 때에는 아무 준비 없이 연단에 섰고 지금까지도 내가 버벅거렸던 부분들이 조금씩 생각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때야 몰랐다 쳐도 지금은 중증의 엄격성을 가진 구성원이 여럿 포진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그때보다는 더 긴장된다. 말하는 것이 직업이기에 내 목소리와 말투를 다듬으려 자주 노력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오래간만에 연수자료를 쭉 읽어보며 내 목소리를 녹음해 봤다. 일주일에 몇 개씩 수업 콘텐츠를 찍어 올려야 했던 혼돈의 2020년을 보내며 많이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이어폰을 통해 듣는 내 음성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꾹 참고 끝까지 듣고 나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말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들을 희미하게 따라 하는 대목들도 발견됐다. 잘하고 싶은 분야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그러다 보니 15분이 채 안 되는 연수를 준비한답시고 1 시간 넘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있고 말았다. 역시 나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단순히 '잘하는'이 아닌 '좋은' 것들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