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_일기
청소년들의 사회화를 맡는 관계로 피할 수 없는 질문 중 하나가 ‘왜 그렇게 해야 해요?’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숙제 이거 왜 해야 해요? 왜 줄 서서 들어가야 해요? 왜 종 치면 자리에 앉아야 해요? 말의 형태로 발화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된다. 아이들에게는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설명하는 이유 대부분에는 하지 않을 때 입게 되는 피해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다. ‘요즘 아이들’의 동인이기 때문이다. 손톱만큼의 피해도 용납 못 하는 아이들과 그렇게 키운 부모들에게 가장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건 수행평가 10점 배점이니까. 줄 서지 않으면 벌점 받으니까. 수업참여도 점수가 감점될 수 있으니까. 특히 이번 근무지의 아이들은 이런 핑계에 익숙하며 바로 반응한다. 기록이 남는 것의 무게를 아는 아이들이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이 만났다. 점수, 벌점, 기록, 그런 것 다 상관없고 그냥 나의 방종이 침해되지 않길 바란다는 태도의 아이들이었다. 이런 경우 어른들은 무력해진다. 벌점 이외의 어떤 체벌도 허용되지 않는데 가정과의 연계 지도도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 오히려 지도하는 것이 민원의 소지가 되는 수많은 경우를 보면서 방법은 하나 포기뿐이다. 그렇게 배움(훈육)의 기회를 놓치고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후회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언젠가부터는 나도 의심이 됐다. 그러게. 이걸 왜 해야지? 왜 남을 배려해야 하고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를 지켜야 하지? 통제하는 처지에서 의무를 가르치지만, 학생 개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난감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랬다. 선생님, 밟지 않으면 밟힌다면서요. 엄마 아빠가 그랬어요.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라. 유난 떨면 아무도 못 건드린다. 절대로 네 것을 빼앗기지 말아라. 그 ‘내 것’의 범위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통제의 도구가 조금씩 달라졌던 것이고 다행히 올해는 그것이 점수와 벌점이었던 거다.
명확한 이유 없이는 설득되지 않는 나였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답을 주고 싶어 한동안 많이 생각했다. 결론은 이 모든 것이 교실 속 거대한 줄다리기라는 것이다. 상반되는 두 가지 가치가 양 끝에 있다. 서로 나누기 vs. 내 것 빼앗기지 않기. 양 끝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그 교실은 평온하게 돌아간다. 가끔 이기적인 사람이 나타나 분위기를 흐릴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양보하고 품으며 평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내 것 빼앗기지 않기’ 쪽으로 가다가다 결국 줄이 끊어져 버리면 무질서와 혼돈이 온다. 소수의 미꾸라지가 일으키는 흙탕물은 시간이 지나 정화되지만, 모두가 미꾸라지인 집단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누군가는 이 줄다리기가 균형을 이루며 갈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며, 계속 잔소리하고 알려줘야 한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줄다리기 게임의 심판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실 이 게임을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맡은 사람. 어쨌든 ‘통제’가 필요하다는 면에서는 궤가 같았다. 관리자나 감시자 필요하다는 면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