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천선란의『나인』과 김초엽의『지구 끝의 온실』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작가 둘이 같은 해에 발표한 책이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을 때, 독자로서 느끼는 감정은? 게다가 과거에 하던 공상이 놀라운 형태로 가공되어 책으로 전달되었을 때, 독자로서 느끼는 감정은? 나의 답은 둘 다 놀라움이었다.
대학교 때 즈음인가 사회초년생 때 즈음인가. 지금 떠올리면 별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별것이었던 것들에 고민하며 인간으로 태어나 겪는 모든 일에 깊이 좌절했다. 아주 근원적인 고민은 왜 인간은 이런 일을 성취하고 견디어 내며 살아야 하는가에까지 닿는다. ‘모든 건 밥그릇 문제야.’라는 어떤 드라마 대사를 떠올리다가, 그럼 왜 인간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애를 써야 하는 걸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의 끝은 ‘식물’이라는 유기체에 가닿게 됐다. 식물은 태어난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원인 햇볕과 물로 생존하고 산소를 생산한다. 인간이 사유재산과 자기 집단을 만들어 생존하고 유해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지점이다. 어쩌면 식물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된다면 생존이나 연명 대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어봤자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나무가 될 리 만무하다. 공상은 내게 아무런 것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심사를 옮겨갔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돈과 재산에 욕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아이가 생긴 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나인』의 주인공 나인은 ‘누브’라는 종족의 일원인데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가졌으나 씨앗으로부터 태어난다(피어난다). 대지와 에너지를 나누고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다. 종종 식물이 만들어 주는 형체를 보기도 한다. 소설에는 누구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늘 그렇듯 범죄의 흔적은 인적 드문 산속에 버려진다. 그러나 ‘산’은 모든 걸 보고 있었다. 인간을 속일 수는 있어도 산과 나무를 속일 수는 없었다. 식물은 나인에게 상황의 전모를 그들의 목소리로 알려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사실 내가 식물이라면 인간의 삶에 개입할 것 같지는 않다. 바람의 방향 따라 그 세기에 한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식물들의 운신 폭이며 실상 그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증오, 분노, 질투 등 미묘한 감정들은 존재들이 부대끼고 살 때, 그리고 소유가 핵심이 되는 방식이 삶을 지배할 때에 피어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죽음 또한 별문제가 아닌지 모른다. 죽은 식물들은 순환되어 다른 생물로 피어나기에. 내 손에 쥔 뭔가를 절대 놓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이나 아쉬움이 아니라면 인간도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거쳐 인간이 터득한 깨달음을 그 존재로 증명하는 가장 진화된 존재들. 관심 가진 작가들이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나서는 인간도 동물도 외계생명체도 아닌, 식물이 인류를 구원하는 상상에 놀랐다. 이후 읽은 천선란의 『나인』에서는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 소녀가 등장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나 있는지도 모르는 생물들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와 활약하는 거다. 누군가 이런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재주 좋은 사람들이 그걸 써서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마치 씨앗이 흩어져 나무로 자라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비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그렇다.
✅ 지구 끝의 온실은 이미 한번 짧게 글로 씀.
https://blog.naver.com/eynyk/222532933278
✅ 그리고 태초에... 한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