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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an 16. 2022

나는 안도한다.

별님일기



© souvenirpixels, 출처 Unsplash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갈래갈래 나 있다.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복잡미묘하고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은 별이와 만난 이후 새로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괴로움과 기쁨, 죄의식과 뿌듯함처럼 양극단에 있는 것으로만 알던 감정이 사실은 칼로 자른 듯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걸 말뿐 아닌 피부로 느낀다.



최근 내가 별이를 기르며 느끼는 감정의 비중에는 ‘안도감’이 가장 크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별이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안도감은 별이와 내가 세상의 모든 존재나 관계 중 가장 밀접한 사이임을 인정받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쉽게 떨어질 수도, 떨어져서도 안 되는 관계임을 나를 비롯하여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법률적 측면에서도!)



별이가 48개월이 되기 전 영유아 검진을 서둘러 다녀왔다. 늘 다니던 소아과를 가느라 전에 살던 동네로 차를 끌고 갔다. 자주 나들이 다녔던 그 거리가 보이자 별이는 아는 체를 했다. 별이의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내가 있었고 이 아이가 보고 배우는 대부분의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번 영유아 검진에는 시력 검사가 있었다. 검사의 진행 방법을 어디서 안 것인지, 의사 선생님이 가리키는 그림에 척척 대답하는 별이를 보며 놀랐다. 우산! 비행기! 자동차! 음... 기차! 별이가 또박또박 발음하는 모든 단어가 경이로웠다. ‘자, 별이 아~ 해 보세요.’라는 지시에 크게 입을 벌리고 ‘아~’하던 별이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너의 처음마다 내가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벅차던지.




몇 주 전 일요일에 나는 몹시 화가 났었다. 주말 청소 담당인 아이 아빠가 몇 번이고 별이에게 어지른 장난감을 치우라고 시키더니 (당연히 별이는 한 번에 치우지 않는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자기도 청소를 하지 않겠다며 드러누워 버린 것이다. 그 발화의 수신자는 나였다. 별이 방을 청소하지 않겠다는 사인. 별이가 아빠 말을 한 번에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정당한 이유를 얻었고 이 일은 돌고 돌아 내 것이 될 예정이었다. 알면서 모른 척, 아이 때문인 척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와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4시간 정도를 머물렀다. 다시 집으로 갔을 때 별이 방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별이는 ‘엄마! 내가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어!’라며 달려 나왔다. 머쓱한 기분이 하루 동안 지속됐다. 머쓱함은 곧 죄책감이 되었는데 별이가 자꾸 ‘엄마 혼자서 나갔지? 엄마가 혼자 나가서 나는 외로웠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별아, 엄마가 속상해서 나갔는데 곧 돌아올 거였어. 나가서도 별이 생각만 했어!”


“난 집에서 엄마 생각만 했어! 엄마 보고 싶었어. 외로웠어.”



분리불안으로 점철됐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안다. 두려움과 조급함과 불안과 슬픔이 뒤범벅되어 불편한 기분이 지속되는 상태.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아야만 사라지는 그런 감정일 테다. (단순히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엄마가 나를 보듬어 주어야만 사라지는 그런 감정일 테다.



별이의 수첩을 꺼내어 그림을 그렸다. 엄마와 아이를 동그라미 모양으로 그리고 집 모양도 그렸다. 화살표로 엄마 동그라미가 집으로 돌아오는 표시를 했다.



“별아, 이건 엄마랑 약속인데. 이렇게 그림이 있으면 엄마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 엄마는 어디 가든 별이랑 같이 다니는데, 혹시 혼자 가게 되어도 엄마는 꼭 다시 돌아오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회사 책상에 별이 사진 있는 거 봤지?”


“응, 봤어!”


“엄마도 맨날 회사 가서 별이 사진 보면서 그리워하지~ 별이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 엄마도 별이 보고 싶어서 얼른 뛰어오거든!”



평소보다 부풀린 감정을 다다다 설명해 주고 그림이 그려진 수첩을 잘 보이는 데다가 두었다.




답답함과 죄책감과 서러움을 소화하는 이런 과정들은 서서히 안도의 감정으로 변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 종종 자리를 비우는 엄마,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있게 하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이지만 늦더라도 늘 별이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게 당연한 일이다. 평소보다 일이 밀려 몇십 분 늦게 퇴근했던 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별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하원 시키던 날에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순간, 별이와 내가 탄탄하게 묶여 있다는 사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된 거다. 직업 특성상 사람들과 일 년 주기로 만나고 헤어진다. 정들라치면 헤어짐이 찾아온다. 더 함께하고픈 사람과 원치 않게 이별하는 과정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자연스러운 받아들임과는 거리가 멀다. 늘 아쉬움이 남는다. 만남과 헤어짐에서 감정적 격변을 겪는 내가 이토록 탄탄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이루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 별이가 스무 살이 넘어 건강한 성인이 될 때까지 나와 별이는 이렇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별이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때까지 내 몫에 최선을 다할 거다. 내 인생에 찾아온 작은 귀인貴人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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