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식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으나 너무 기대해서 그런가 실망한 부분도 있다. 『행성어 서점』에 싣기에는 다소 큰 주제고,단행본으로 보기에는 내용 진행이나 설정이 좀 아쉬웠다. 창작은 자기 속을 긁어 퍼 올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초엽 작가의 ‘긁힐 속’이 이제는 많이 동이 났나 싶기도 하다.
줄거리
연구소 화재로 폐허가 된 ‘므레모사’라는 도시에 다크 투어리즘을 위한 여행자 체험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여기에 최초로 선발된 몇 명의 사람들이 입국한다. 국적도 직업도 다른 여행자들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전직 무용가 출신 유안이다. 폐허가 되었으리라 생각한 도시는 예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귀환자’들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망가진 도시의 모습을 담으러 왔던 여행자들은 자신의 편견을 반성하고, 그리고…. 므레모사의 사람들과 일치되기 시작한다.
유안이 므레모사 귀환자들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서사의 중심이다. 그러나 유안이 무슨 탐정이나 해결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유안은 귀환자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이 결정이 뜻하는 바가 모든 서사의 핵심 메시지다. 전직 무용수였으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에 의지해 살아가야 했던 유안은 대중에게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였다. 의족을 하고서 춤을 추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열광했으나, 사실 유안은 끝나지 않는 환지통을 달고 살았다. 이미 사라진 다리가 아직도 신체에 연결된 것처럼 똑같은 감각과 통증을 느끼고 그것을 의식하자마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날의 반복이었다.
희망과 재건의 아이콘이 된 유안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므레모사를 찾은 여행자 그룹은 양분되어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가 망가진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기를 바란 사람들과 므레모사의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희망의 싹을 보고자 한 사람들로. 하지만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은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방법으로 도시를 재건한다. 귀환자들은 도약하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식물이 되기를 선택했다. 유안은 희망과 회복 의지,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도약하는 대신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유안은 그것이 자신의 삶에도 일어나기를 바랐다. 책을 끝맺는 마지막 문장에서 유안이 므레모사에 자진하여 오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
어떤 것의 현상이 깨어지면 우리는 그걸 당연히 원상태로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불가역적인 것도 있는 법이어서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되살리기 어려운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사고로 잃은 유안의 다리 같은 것들. ‘불가역적 잃음’을 회복하려 애쓰는 사람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말한다. 불행의 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일은 숭고하다. ‘잃음’이 ‘얻음’ 또는 ‘있음’으로 변할 수는 없어도 숭고한 정신이 남는 법이니, ‘대치’된다고 써야 할까.
그러나 유안은 그 숭고한 노력을 포기한다. 늘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림자 다리’를 지니고 있으니 엄밀히 유안 자신에게만은 그것은 ‘잃음’이 아니었고, 그런데도 꾸준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숭고한 노력에 대한 시선과 압박이 그를 미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땅에 붙박고 선 바로 이 삶을 기본값으로 두고, 얻음으로의 회복을 놓아버리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앞으로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므레모사의 귀환자처럼 되고자 했던 것이다. 흥미와 가십을 찾아온 다른 여행자들과 유안이 구별되는 지점이 아닐까. 유안은 삶을 일구러 여기에 왔으니.
다 쓰고 보니 나 이 책 진짜 재밌게 읽은 것 같은데...?
그런데 중간에 마크 찍힌 깃발 펼쳐서 감염자들 각성시키는 설정과 울부짖는 소리를 굳이 큰따옴표 처리한 것은...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어요ㅠㅠ 으헝... 그리고 김초엽 작가 소설에 퀴어 등장하는 것은 이제 디폴트가 된 것 같다. 나중에 관련 인터뷰하면 찾아 읽어보고 싶다. (이거 읽고 작가가 ‘샌 주니페로’ 좋아한다는 거 생각나서 몇 달 만에 다시 넷플릭스 틀어 봤다)
덧붙임) 책 판형이 작아서 마치 휴대폰 화면을 들고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손에 쏙 들어와 읽기 편했다. 2020년대 출판의 신풍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