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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Apr 10. 2022

어느 단톡방

육아불안 되짚기 - 엄마의 일기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별이와 비슷한 월령의 아이들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에 들어갔다. 육아 우울증으로 칩거하는 동안 인맥이 되어 준 곳이다.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새로운 육아용품 브랜드와 양질의 육아서 추천의 장이 되었고 서로의 아이의 발달 단계를 비교하는 곳이 되기도 했다. 별이는 연초 생이어서 발달이 늦되다 생각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나였다.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열패감에 빠지는 일이 잦았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법을 몰랐다.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아이 돌이 가까워지면서부터 단톡방에서는 엄마들의 호캉스가 대유행했다. 몸이 점점 회복되고 아이의 외출도 가능해지면서 그동안의 수고를 풀어내야 한다는 정당성이 부여됐다. 1월생 엄마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고 이후로는 대여섯 명이 줄줄이 휴가 경험담을 올렸다. 호텔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는 아기용품 리스트가 올라왔다. 그 밖에도 여러 팁이 공유됐다. 백일 아기가 늦은 저녁 잠들면 아기침대에 휴대폰 거치대를 놓고 특정 어플을 설치해서 틀어놓은 다음, 다른 휴대폰에도 그 어플을 틀어 켜 놓은 상태로 남편과 라운지에 가서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팁이었다. 말하자면 생중계 같은 거였다. 아이가 잠에서 깨거나 울면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단숨에 룸으로 달려가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좋은 팁이라고 치켜세웠다. 엄마도 즐길 권리가 있다며 손뼉 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의 불안도로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내게 바깥세상은 거대한 오염원 그 자체였는데 불특정 다수가 쓰는 호텔 방에 잠든 아이를 홀로 두고 부부가 자리를 뜬다는 것이 대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모두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는 엄마’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으니까. 상황을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즐길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엄마’라는 자기 비하와 함께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나도 출산 전의 자유롭던 인생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건 그거였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억지로 시간을 쪼개어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 마음 자체가 무척 촌스럽고 뒤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됐다. 아이에게 매여 아무것도 못 하는, 자아가 사라진 엄마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혼란해졌다. 나의 주관을 내가 의심하게 되고 내가 내린 판단을 비하하게 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어떤 엄마는 유아 도서 전집을 거금을 들여 사고 몇 개월 후에 처분하는 일을 거듭했다.

나는 별이에게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책을 계속 읽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또 다른 사람은 아이를 특별한 기관에 보내면서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일장연설했다.

나는 평범한 기관을 선택한 내가 보잘것없는 엄마는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일찍부터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어야 한다며 외국 공항에서 갓 돌 된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이 공유됐다.

엄마의 그릇된 선택으로 가치관이 편협해진 별이를 상상했고 내가 자격 없는 엄마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그러는 매 순간이 나를 엉망인 엄마로 만들었다. 비교와 불안과 열패감과 조급함이 나를 구석으로 몰고 갔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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