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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May 22. 2022

언니들과 나와 동생들

주말 일기



© GDJ, 출처 Pixabay



 종종 외부시험감독 요청이 들어온다. 주말 친한 동료의 학교에서 진행되는 입사 시험에 지원 다녀왔다. 이번 시험은 대관 학교에서 추천한 인력과 주관 회사에서 차출된 인력이 둘씩 짝지어져 한 고사실 감독관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시험 전, 본부에서 감독요령 교육이 있었다. 배정받은 고사실을 확인하고 번호가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 근처 의자에 고사 물품 봉투와 함께 생수병이 하나 놓여 있었고, 바로 열어 목을 축였다. 오랜만에 멀리까지 오려니 목이 많이 말랐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날씬한 여성분이 옆자리로 왔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오늘 짝꿍이 되실 분이구나. 인사를 나누고 감독관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짝꿍이 갑자기 그 생수병을 가져가 뚜껑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아, 그거 제가 마셨는데요.”

“아, 그러세요? 같이 마셔요, 그럼!”

“제가 여기 제공품인 줄 알고 마셔 버렸어요. 입 대고요….”

“아….”


입구에 쌓여 있는 500mL 물병들이 생각났다.


“제가 저기 가서 물병 하나 가져올게요.”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내가 엉덩이를 반쯤 든 상태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동안 빨간 원피스의 짝꿍이 사뿐사뿐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본부에서 제공하는 생수병과 자리에 놓여 있던 생수병은 브랜드가 달랐다. 짝꿍이 출근길에 따로 챙겨 온 물병임이 분명했다. 돌아온 짝꿍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고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불편한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두 배로 민망했다.



 상자에 포장된 문제지와 답안지 등을 감독관 한 명이 직접 들고 고사장까지 가야 했다. 고사본부는 건물 4층, 고사장은 옆 건물 2층. 무게가 꽤 나가는 상자였다. 내가 들고 가겠다고 말했다. 타이트한 원피스에 곱게 세팅한 머리카락, 굽이 높지 않지만 편할 리 없는 여름 샌들까지, 주말에 회사 일을 하느라 아침부터 성의껏 꾸미고 왔을 짝꿍의 마음이 차림새에서 드러났다. 반면, 학교 추천으로 여기 온 인력들은 연령대가 무척 다양하고(20대에서 60대까지) 육체노동(학교 밖의 사람들은 모를 거다. 이 일에 육체노동도 포함된다는 걸)하기에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적당히 품이 있고 막 입을 수 있는 차림을 하고 있다. 누가 어디에서 온 건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차림새로 갔기에 몸이 더 편한 내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까 물병 일이 미안하기도 했고 말이다.



 몸에 딱 붙는 옷이 구속복처럼 느껴지면서 그런 옷을 입지 않는지 오래다. 출산 후 경증의 족저근막염이 생겨 고워크나 핏플랍 아니면 신지 못하게 된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아이 등하원 때문에 ‘달려야 하는 구간’이 생겨 편한 신발 애호가가 됐다. 아침 시간에는 꾸밈 외 내가 선호하는 다른 활동들이 있어 간단한 화장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닌 지 오래됐다. 초임 때처럼 살랑살랑 다니겠다는 결심으로 무려 25만 원을 투자한 S컬 세팅 머리가 쓸모없어졌다. 그러나 그건 여러 조건을 고려해 내가 내린 선택일 뿐이고, 예쁘게 꾸민 여성분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부러운 일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정성껏 단장했을 그녀에게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육아로 단련된 상완근으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지하철 출퇴근으로 단련된 대퇴사두근 덕에 계단쯤은 가뿐했다. 날씬하면서 가냘픈 짝꿍보다 내가 더 적임자다.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초면인 분을 위해 궂은일을 맡아하는 것이 대체 내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러는가. 그저 ‘누가 상자를 들까’로 눈치 싸움 벌이는 것이 더 피곤하기에 그랬던 건 아닐까. 불편한 상황을 못 견디는 나의 성향이 또 자기 몫을 한 걸까. 그런데 더 생각해봐도 아니다. 나도 한때는 나보다 먼저 구속복을 벗어던진 선배들, 언니들로부터 그런 호의를 받았었다. 아가씨는 이런 거 하지 마, 아줌마들이 할게. 손이 어쩌면 이리도 부드럽니, 이거 하지 마라, 손 버린다. 어쩜 이렇게 뼈대가 가늘지, 툭 치면 부러지겠다, 이거 내가 할 테니까 넌 저기 가서 다른 거 해. 언니들도 나로부터 그런 모습들을 봤을 거다. 오랜 시간을 들여 단장하고, 높고 불편한 구두에 발을 꿰어 넣는 마음, 햇살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 거리는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걸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설렘. 이건 단지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따위가 아니다. 거울 속의 나로부터 행복을 얻는 마음, 같은 것을 품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내가 떠나온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초면인 사람에게서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고. 시간을 건너온 언니들의 마음이 내게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칠판 앞에 서서 감독을 해야 했기에 여름 샌들은 아무래도 무리였을 것이다. 짝꿍이 계속 다리를 어찌할지 모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짠했다. 워크랑 핏플랍 영업 좀 할게요. 이게 발바닥 편한 데에는 최고인데 말이죠. 아마존에서 직구하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시험을 마치고는 감독1이 답안지를 가지고 본부로 복귀해야 했다. 감독1이었던 나는 모든 고사 물품을 예의 그 상자 안에 무겁게 욱여넣은 채로 씩씩하게 본부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늘의 알바가 종료됐기에 짝꿍과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마음속으로 인사할 수밖에. 조심히 가세요. 나중에 팔심 좀 튼튼해지면 가끔 동생들 짐 대신 들어주세요. 그거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친구도 나의 못난 어른 같은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줬다. 내 물건 네 물건 판단 없이 써 버린 나였으니까. 나도 어린 시절 언니들께 그런 실수를 당해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딱 보면 모르나 왜 남의 물건을 막 쓰지, 언짢으면서도 괜찮다고 넘기며 내가 한 번 참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오늘 배려 하나와 배려 하나를 맞바꾼 셈지도 모다.



 나는 늘 여자들이 여자들을 돕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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