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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Apr 24. 2022

누군가는 해 주어야 할 이야기

[독서노트] 『순례 주택』, 유은실





작가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내가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사람도 아닌데 이 책을 보면서 그 마음을 온전히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아주 따스하고 세밀한 방식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순례 씨 전 남편은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녀는 전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이혼했고 상속자인 아들이 전 남편이 남긴 부를 달리 처리하기를 바랐으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순례 씨는 일평생 육체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건물을 세웠고 그로부터 큰 부를 이루지만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순례 주택의 세입자들에게는 보증금이 없다. 공동생활을 하며 지켜야 할 몇 가지 수칙들만 온전하게 지키는 것만이 순례 씨가 내건 조건이었다.


노동보다는 자본의 힘이 점점 막강해지고 있는 시대에 갈 곳 못 찾아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순례라는 인물이 어떻게 가 닿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앞날이 한창인 젊은이들은 하루라도 기류에 올라타야 할 것이고 그래서 실제로 요 몇 년간 많은 사람이 자신 안의 문맹을 인정하고 하루라도 빨리 ‘재빨라지기’를 추구했다. 그 기류에서 한번 벗어나면 다른 이들보다 몇 년을 늦게 되니, 다들 무언가에 쫓기듯 그 시간을 보내왔다. 모두가 이것이 절댓값인 것처럼 주장할 때에, 한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서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런 데에서 오는 안도감이 있다.


순례 주택의 수칙 중 하나는 철저한 분리배출이다. 순례 씨는 환경 오염을 가속하는 행동을 삼간다. 앞으로 세상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 바로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 위기다. 가속도가 붙은 불볕더위와 된 추위를 체감되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가 대체 이제껏 무슨 일을 해 왔던 걸까’ 고민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이 행동까지 바꾸어 주지 못 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편한 대로 살아간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유구무언이다.


주인공 수림의 부모는 순례 씨의 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시야가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이들은 우연히 얻은 것을 당연히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살아야 하는 방법도 모르기에 평생을 수림의 할아버지에게 의지했고 그 기둥을 잃고 나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 대하여 반성할 줄 모른다. 몸만 어른 된 자의 전형이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이런 유형에서 멀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뻔뻔함보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점을 핑계로 댈 수 있을까. 한편 15년째 국가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공부를 빌미로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은 채 2,30대를 지나온 사람이다. 작가의 철퇴에 나도 그 지인도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굳이 승패를 가려보자면 이 책의 모든 에피소드는 순례 주택의 사람들과 수림 승리를 향해 가고 있다. 백면서생보다는 생활 지능 쪽에 손을 들어주며, 모든 책 읽는 이들이 다 백면서생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듯 공부하며 생활을 굳세게 이어가는 인물도 등장한다. 수림의 부모를 잘 다루기 위하여 수림과 길동 씨가 학력이나 부같이 측정할 수 있는 단위를 내세워 계획을 짜는 에피소드도 있다. 사람의 인격을 수치화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세상이 좀 다르게 흘러갈까 싶어졌다. 돈처럼 정확한 수치로 계산되어 한 사람을 설명하는 기준으로 두루 쓰인다면 어떻게 될까. 인격이 그 사람의 라벨이 되어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면. 사람들은 부도 갖추고 인격도 갖춘 이들을 잘 가려낼 수 있을 것이고, 반면 부도 인격도 갖추지 못한 사람 또한 가려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삶에 균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더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정당하게 벌어 나누고 지키며 살자’라는 순례 씨의 제언이 지금 시대에는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데도 누군가는 늘 이런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휴식이 됐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잠시 왔다 떠나는 이들이다. 내가 관광객인지 순례자인지 살아가는 동안 거듭 생각하며 삶을 꾸려나갈 일이다. ✅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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