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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n 01. 2022

그때와 지금의 어린이들

김소영 작가 강연 후기

 중앙도서관에서《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 강연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가벼운 에세이로 읽었었다. 작가는 어린이의 재치와 사랑스러움을 포착하여 책을 썼다. 모든 에피소드가 사랑스러웠고 그래서 한겨울 호빵 같은 느낌의 책이라고 감상을 남긴 적이 있었다.


 비양육자이며 사교육 종사자인 작가에게는, 어린이를 직접 키우는 삶이나 사교육계에서 굳이 챙기지 않는 어린이들의 삶은 직접 체험이 불가한 영역일 것이다. 어린이를 키우는 데에 분노와 화의 비율이 얼마나 치솟는지, 그 이후 죄책감은 얼마나 깊은지.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한 곳에 여럿 모여, 최소 스무 명 이상이 모여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사회를 구성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속에서 어떤 서열 관계가 만들어지며 어떤 폭력까지 일어나는지, 작가는 직접 겪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육아 에세이도 교육 에세이도 아닌 ‘가벼운 힐링 에세이’로 다가왔었다. 나는 김소영 작가의 강연이 그렇게 궁금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장소에서 유명한 작가의 정제된 언어를 듣고 싶어서 그 자리에 찾아갔던 것 같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차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김소영 독서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를 몇 개 더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김소영 작가에게는 여러 인터뷰 요청이 있다고 했다. 어린이에 대한 존중 어린 시선을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많은 마이크가 향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저 어린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독자들에게 ‘어린이들은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 준 작가일 뿐인데. 종종 현장의 목소리보다 유명한 사람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직접 목격한 듯해서 좀 씁쓸했다. 도서 출간 후 바뀐 일상에 대한 가벼운 언급 정도로 생각하고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 보기로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김소영 작가는 ‘커다란 이야기’를 차례차례 연결해가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존중받아야 할 시민입니다.


 작가는 아동 인권과 차별과 아동 학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1923년의 어린이 선언문을 인용하며 어린이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역설했다. 노키즈존 확대에 관하여 긴 시간을 들여 비판했다.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인권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작가는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르포 기사를 쓴 사람도 아니었으며 아동인권 운동가도 아니지만, 마이크가 쥐어진 자리에서 해야 할 말들을 쏟아냈다.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볼 일 없는 비양육자 작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강연 방향이 예상치 못한 곳을 향해 있었다. 다음에는 감사했다. 자신과 피부로 맞닿아 있지 않은 주제에 관심을 두고 대중 앞에서 옳은 것을 발언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인터넷 공간에서는 자주 악플이 달린다고 했다. 작가는 그 악플을 기꺼이 수용하고 더 많이 말하겠다고 했다) 이는 차원 높은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흔치 않기에 더 귀한 일이었다.




 포크로 음식점 식탁을 내리치는 아이를 저지시키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안당했던 기억, 아이와 장거리 버스 타기가 힘들어 택시를 잡았는데도 기사로부터 온갖 빈정거림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동과 동행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는 모든 주 양육자 – 특히 여성 양육자 – 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특수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양육자는 매시간 매초를 자기 검열하는 데에 소진해야 한다. 아무 데나 쉬이 갈 수 없는 어린이들은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다. 배움이 일어나는 기회를 모조리 차단당한다.


그 시절을 이겨 낸 어린이들이 지금의 어린이들을 기른 거예요.


 강연에서 언급한 그 어떤 문장보다도 분위기에 이바지한 한 마디였다. 여기에 있는 모두도 한때는 어린이였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었다.




 여전히 작가가 어린이들의 구석구석을 다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들도 사람인지라 심술궂음, 잔인함, 난폭함 같은 다양한 특성이 있고 어린이들의 사회에도 온갖 갈등과 폭력이 있다. 이 지점을 지워 버리면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반쪽짜리가 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작가가 어린이들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하는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축구를 좋아해서 독서 교실에 늘 땀에 전 FC 유니폼을 입고 오는 남자아이에게 ‘좋아하는 장소에 예의를 다하여 정복을 차려입고 오는 아이’라는 해석을 얹은 것은 어린이를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느끼게 했다.


 김소영 작가는 왜 어린이들을 좋아할까? 궁금했다. 예쁜 아이들만 만나서일까? (독서 교실에서는 일대일 수업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을 앉히거나 조용히 시키는 통제를 잘 하지 못한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이 의문에 작가는 어린이 책을 만들다 보니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자신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그들이다 보니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보게 되었다고 답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며 생활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책이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독자들은 대부분 동심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을 거다. 책 속 어린이들의 미숙함, 당돌함, 귀여움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나와 다른 인간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감정 또한 느꼈을 것이다. 작가가 좋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제까지 했던 이야기가 아닌 ‘더 커다란 이야기’를 해 준 것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사랑스러움의 비율만큼이나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인 어린이들이지만 그런데도 그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어른들의 선택과 부름으로 이 세상에 온 존재들이며 어른들은 그들을 가르치며 함께 살아나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즐기러 갔을 뿐인데, 어린이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 길이 별이가 걸어갈 길이며, 별이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가 걸어갈 길이 될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고민하기로 한다. 좋은 양육자이자 선생님,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말]


나는 아동이나 청소년 학대의 징후를 최전방에서 직접 포착하는 당사자다. 이들의 보호에 관한 이야기는 피부로 맞닿는 ‘현재의 일’이다. 김소영 작가의 커다란 이야기에 덧붙여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본다.


“아동이나 청소년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세요.”


실질적인 대책으로 신고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수년 전, 자기 딸과 어울려 다니는 같은 반 아이를 직접 만나야겠으니 교문 앞으로 내보내 달라는 학생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둘이 어울려 다니는 것이 꼴 보기 싫으니 떼어 놔야겠다는 거였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고 말했고 꼭 대화가 필요하다면 양쪽 보호자 또는 교사가 동행한 자리에서 말씀하시라 전했으나, 온갖 폭언과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자기가 지금 교문 앞에서 대기 상태이니 각오하라는 말에 나는 며칠간 그 남성이 귀갓길을 막고 서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없었다. 전화로 퍼붓는 폭언 정도는 비일비재했던 해였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였고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해 집을 나와 쉼터로 가야 했던 두 자매의 이야기를 건네 들었던 해이기도 했다.


가정폭력의 징후가 뚜렷한 아이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신고해야 할까. 아이들을 보호하려다가 내가 입게 되는 피해는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감히 신고했다는 이유로 그 아이들의 친권자들로부터 화풀이나 공격 대상이 되지 않고 무사히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안 해 본 교사가 드물 거다. 나에게도 가정이 있고 한참 키우고 가르쳐야 할 아이가 있는데 의로운 일이 삶을 망가뜨린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우리를 잔뜩 위축시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중간 역할, 아픈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최전선에 있는 우리에게 힘을 좀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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