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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n 01. 2022

그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니?

별님일기


1


별이가 자주 하는 말 중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 있다.


B 엄마! 엄마가 먼저 잘 못 했으니까 엄마가 사과해!

M 엄마가 뭘 잘못했지? 얘기해 줘.

B 엄마가 잘못했어. 나한테 ~했고 ~했어.


가끔 나는 이 사회나 이 지구에 별이를 불러온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미안함에만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서 노력할 뿐인 엄마에게 별이가 그렇게 말할 때는, 자주 뜨끔해진다.


M 그래, 엄마가 미안해. ~한 건 엄마가 잘못 했어.

B 맞아! 엄마가 잘못했어!

M ....

B 엄마! 나도 미안해.


별이와의 사과 논쟁은 이렇게 둘 다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갈등은 어느 한 쪽의 잘못으로만 생기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래서 종종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서로 사과하는 마무리’가 가장 깔끔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별이와의 갈등은 어쩌면 별이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세상에 태어나게 한 내 잘못일 수도 있다는, 피곤하디 피곤한 죄책감에 나는 그저 먼저 사과할 뿐이다. 그것이 별이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별아, 먼저 사과한다고 지는 건 아니야. 갈등을 해결하지 못 하고 회피해 버리는 거, 그게 둘 다 지는 일이야. 엄마도 잘 못 하고 있어서 미안해. 아, 또 미안하다고 해 버렸네...




2


별이와 별이 이모와 함께 간만에 전시회 나들이를 갔다. 처음 와 보는 장소에서 신이 나 뛰어다닌 별이와 오랜만에 장거리를 뛰느라 피곤해진 이모를 위하여 최대한 가까운 식당을 찾아 가 점심을 먹었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이모는 반미 세트를 시켰고 사이드로 새우칩 과자가 딸려 나왔다. 과자를 좋아하는 별이는 이모의 사이드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다 놓는다.


A 별아, 그거 이모 건데?

B 아냐, 내 거야. 이모는 이거 하나만 먹어.

A (어이없는 얼굴) 와... 이모가 시킨 건데...

B 엄마, 이거 먹어. (엄마한테는 과자를 여러 개 준다)

M 고마워!


열심히 집어 먹다 보니 새우칩 과자가 두 개 남았다. 하나는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모양이고 하나는 반듯한 타원형이다.


B 엄마, 이거. 엄마가 더 예쁜 거 먹어.

M 어머, 별아. 고마워!

A 어머어머, 쟤 봐라.

M 별아, 엄마가 왜 더 예쁜 거 먹어야 돼?

B 엄마 사랑하니까!


이모의 샘내는 표정, 엄마의 으스대는 표정, 별이의 마냥 행복한 표정. 젓가락을 들어 리듬을 치며 동요를 시작하려는 별이를 저지하면서 확인한 주변 사람들의 피식 웃는 표정.


별이는 어디에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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