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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05. 2023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전시 후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출처 https://www.mmca.go.kr/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지난가을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스크랩해 둔 전시 후기다.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번 전시는 최우람 작가의 잘 알려진 기존 작업에 내재해 있던 질문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재구성한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전에 없는 위기를 겪으며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의문을 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기후변화와 사회정치경제적 위기로 인한 불안감과 양극화의 심화는 방향상실의 시대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에 작가는 방주라는 주제의 전시를 만들고 동시대를 구성하는 모순된 욕망을 병치시켜 관람객들과 오늘 우리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는 장을 마련했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관람객으로서의 감상은 인상적이었던 작품 위주로 적어 본다.



원탁

검은 새




작가는 작품을 통해 머리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 또는 머리를 차지하지 않기 위한 욕망 두 가지를 다 의도했다고 한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어떤 것이든 원탁을 짊어지기로 한순간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장에서 회전하는 <검은 새>가 원탁을 내려다보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 투쟁에서 벗어난 존재, 투쟁을 지켜보는 존재로 읽힌다. 지푸라기 허수아비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여 나도 동행도 검은 새를 올려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나 또한 원탁을 들어 올리는 허수아비 중 하나여서일까. 지금 우리를 조망하고 있는 자는 누구일지.


<원탁>은 천장 쪽에 있는 감지기를 통해 머리공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원탁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으며, 가끔 오류가 나서 공이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관객이 공을 잡아서 다시 원탁으로 던져주는 일도 있는데 작가는 이 또한 <원탁>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은 원탁에 매인 모든 이들 (여기에서는 열여덟 명의 머리 없는 허수아비들)이 해방될 수 있는 기회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관객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올려놓는 행위 자체가 이 투쟁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 아닐까.


이제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아무도 없는 것이다.





작은 방주

등대, 두 선장, 제임스 웹, 천사, 닻, 출구



      키네틱 아트가 주는 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한때 매 주말 교회 다니며 성경공부모임도 했던 1인으로서 방주가 주는 이미지는 버려진 땅 혹은 저주받은 땅을 떠나는 도구,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허락된 수단이다.


작가의 해석에도 위와 같은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재생 불가능의 범위를 향하는 지구에서 인류 생존이 가능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한 탐사가 본격화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방주를 다시 떠올려 보아야 한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작은 방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실로 여기에 탑승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는 극소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두 명의 선장이 다일 지도 모르고.


선장들이 타 행성에서 인류 번식을 가능케 하는 서로 다른 성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노아의 방주에 탄 동물 짝처럼. 물론 작가가 무성의 모습으로 표현해 주어 다행이었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다의 이정표가 되는 등대가 방주 안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선장의 뒤에 제임스 웹 망원경을 붙여놓은 것만 봐도 방주가 향하는 곳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규모와 방향을 예측할 수조차 없는 우주로 나아가는 방주에 지도나 등대가 의미 있을까? 사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여행도 아닐 것이며 신의 계시도 없었을 터다. 등대의 불빛이 마치 사람의 눈처럼 앞을 향해 모이며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노가 열리고 방주는 방향도 모른 채 나아간다.


방주의 노가 움직이는 장면이 정말 장관인데, 공간과 조명과 음악이 한몫하여 우주여행의 느낌을 구현한 것이 경이로웠다.



관람 당시에는 몰랐지만, 앞 쪽에 있는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작품 <출구>가 이와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출구>는 여러 모양의 문이 계속 열리며 문 뒤의 문을 보는 영상이다. 끝내 밖은 나오지 않아 관찰자는 그저 수백 개의 문을 열뿐이다. 그렇다면 해석은 더 명확해진다. 등대를 싣고 가는 방주는 끝내 정착지를 찾지 못할 것 같다.


전시 전반적으로 작가의 시니컬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시니컬하고 우울한 사람들은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작품과 해석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축이기 때문에 내게 잘 맞는 전시였다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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